[칼럼] 야구·축구 금메달이 언짢았다면 비정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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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야구·축구 금메달이 언짢았다면 비정상일까

    ■ 한상혁 콘텐츠전략국장

    • 입력 2023.10.26 00:00
    • 기자명 한상혁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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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혁 콘텐츠전략국장

     

    국내 스포츠 팬들에게는 지난 7일만큼 기분 좋은 날이 흔치 않았을 듯하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 야구·축구 대표팀이 나란히 금메달을 딴 날이기 때문이다. 먼저 게임을 시작한 야구 대표팀은 예선전에서 완패를 안겨줬던 대만을 다시 만나 투수전 끝에 2대 0승리를 거뒀다. 비슷한 시각 한·일 결승전을 치른 축구 대표팀 역시 경기 시작과 동시에 터진 일본의 벼락같은 선제골을 이겨 내고 2대1로 역전승을 거뒀다.

    그러나 며칠 후 이날 경기에 대해 몇몇 사람들, 특히 젊은 남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내심 국가대표팀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기를 바랐던 이들이 있었던 걸 깨닫고 적잖이 놀랐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부와 명예가 보장된 프로 스포츠 스타들이 ‘군 면제’까지 받는 모습을 보는 것이 괜히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7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우승한 대한민국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병역 특례를 받는 근거는 지금으로부터 딱 50년 전인 1973년에 만들어졌다. 정확히는 ‘군 면제’가 아니라 병역법에 따른 예술·체육요원으로 공익적인 업무에 복무(공익 복무)하는 것으로 군 복무를 대신할 수 있는 제도다. 예술·체육요원의 복무 기간(2년10개월)은 병역법에서 정하며, 어떤 사람을 예술·체육요원으로 할 수 있는지와 공익 복무 방식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돼 있다. 현재 체육 분야는 올림픽 1~3위(금·은·동메달), 아시안게임 1위(금메달) 선수들이 예술·체육요원으로 2년 10개월의 복무기간 중 544시간 동안 취약계층이나 어린이를 위한 교육 등 특기를 활용한 봉사활동을 하도록 돼 있다.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혜택 논란의 중심은 첫째 야구와 축구, 골프 같은 프로 스포츠다. 이번 대회에서 야구팀은 24세 이하 젊은 선수로만 꾸려진 탓에 24명의 선수 중 아직 병역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19명이 무더기로 혜택을 받았다. 축구팀 역시 22명의 대표팀 중 20명이 혜택을 받는다. 이들은 병역을 사실상 면제받아 프로 선수로서 ‘큰 짐’을 덜고, 많은 선수들이 수백억원대 수입을 거두게 될 것이다.

    아시안게임 종목 확대로 ‘스포츠’로 분류하기 애매한 종목 선수들까지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역시 논란 거리다. 유명 프로게이머 ‘페이커’를 비롯해 6명이 병역 혜택을 받게 된 e스포츠(LoL) 종목 외에도 바둑, 브레이킹 댄스 등이 그 예다. 이쯤 되면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면서 국위 선양한 팝그룹 BTS는 왜 예술 요원으로 복무할 수 없느냐는 형평성 논란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예술 체육요원 제도가 생길 때는 예술 체육분야의 발전 외에도 한국을 세계에 알린다는 국위 선양 동기부여 차원도 분명히 있었다. 당시 한국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16개(1974년)이었지만 올해 2023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42개에 달한다. 21세기 한국이 국위선양에 그렇게 애를 써야 하는 국가인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출산율 급감으로 국내 병역 자원이 크게 줄어든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혜택이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자칫 군 복무를 기피해야 할 대상으로, 군 면제는 승리의 전리품쯤으로 여기게 만든다는 데 있다. 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수많은 국제 대회에 무관심하다가 유독 병역 혜택이 달린 경기에서만 투혼을 발휘한다. 금메달을 확정하고 쏟는 뜨거운 눈물을 ‘군 면제’의 감격으로 의심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선수들이 순수한 스포츠 정신으로 경기에 임하게 되면, 스포츠 팬들도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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