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육아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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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콤 쌉싸름한 육아휴직

    [칼럼] 김성권 콘텐츠뉴스국 부국장

    • 입력 2023.10.19 00:00
    • 수정 2023.10.26 13:31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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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육아휴직 기간을 기존 1년에서 반년을 더해 1년 6개월로 늘렸다. 휴직 기간에 받는 급여도 더 많이, 부족하지 않게 주기로 했다.

    이제 대한민국도 여느 유럽 육아선진국 못지않은 나라가 된듯하다. 북유럽 국가가 자랑으로 삼는 1년짜리 육아휴직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잡았고, 내년부터 1년 6개월을 쓰게 되면 ‘육아천국’으로 불리는 스웨덴의 480일도 훌쩍 넘는다. 기간만 따지고 보면 선진국보다 부족하기는커녕 더 길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육아휴직을 내는 직장인도 꽤 늘었다. 2003년 6816명에 불과했던 육아휴직자는 지난해 13만1087명을 기록하며, 20년동안 20배나 급증했다. ‘육아’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셈이다.

    언뜻 보면 ‘세상이 바뀌었구나’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합계출산율은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20년 전 1.19명일 때보다 분명 육아 환경도 좋아졌고, 선진적인 제도를 갖췄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유는 어렵지 않다. 좋은 제도를 쓸 수 있는 직장인이 일부에 국한돼 있기 때문이다. 늘어난 육아휴직자 수의 대부분은 대기업이나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들이고, 중소기업 직장인의 처지는 20년 전과 비교해 별반 나아진 게 없다.

    실제 통계청이 기업규모별 육아휴직 비율을 조사해봤더니 300인 이상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의 육아휴직 비율은 76.6%로 나타났다. 반면, 4명 이하 업체에 다니는 여성의 육아휴직 비율은 26.2%였다. 2012년엔 28.8%였는데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아빠 육아휴직’에 있어서도 기업간 차별은 더 심하다. 2021년 기준 육아휴직에 들어간 직장인은 총 17만3631명, 이 중 남성은 4만1910명으로 전체의 24.1%를 차지했다. 하지만, 휴직한 아빠의 71.0%는 300명 이상 대기업에 소속돼 있었고, 4명 이하 소기업은 3.2%, 5~49인 규모 기업에서도 10.5% 수준에 불과했다.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은 나날이 발전하는데 출산율은 정반대로 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서 확인된다. 2021년 기준 중소기업은 국내 기업의 99.9%(771만4000개)를 차지한다. 종사자 수도 전체 근로자의 81%(1849만3000명)로 우리 나라 직장인의 절대 다수가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

    결국 육아휴직제도가 아무리 좋아진다 해도 대기업이나 공무원, 공공기관 직장인 등 극소수에게만 달콤할 뿐, 대다수인 중소기업 직장인에겐 줘도 못 쓰는 쌉싸름한 제도에 불과한 셈이다. 이번에도 정부가 내놓은 출산율 대책에 어김없이 ‘공무원이나 대기업을 위한 제도’라는 쓴 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얼마 전 아빠가 된 한 스타트업 직원의 넋두리가 기억에 남는다. 그는 “회사가 걱정돼 육아휴직을 쓰기 고민된다”고 했다. 그가 다니는 직장은 직원이 10명에 불과한 작은 회사다. 직원 대부분이 30~40대로, 결혼을 앞두거나 이제 갓 부모가 된 직장인이다. 만약 육아휴직이 몰려 3~4명의 공백이 생기면 당장 회사 운영이 어려워질 수 있는 구조다. 그는 “나 하나 휴직을 쓰면 다른 직원들도 따라서 쓸까봐 걱정이 된다. 그러면 복직할 회사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들에게 육아휴직은 일·가정 양립이 아닌 생존이 달린 문제였다.

    육아휴직제도의 맹점은 좋아질수록 안 쓰면 손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지만, 앞서 말한 스타트업 직원의 상황이라면 과연 부모가 마음 편히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을까.

    이제는 육아 제도를 법과 사람이 아닌 기업의 입장에서도 고민해야 한다. 모성보호법이라는 틀에서만 엄격하게 다스릴 게 아니라 업종, 규모, 직종별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가정만이 아닌 기업도 초저출산이라는 사회적 난제에 동참할 수 있도록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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