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번아웃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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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번아웃 세대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 입력 2023.10.16 00:00
    • 기자명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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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함께 일하는 젊은 동료가 무심하게 얇은 책 하나 건넨다. <번아웃 세대>. ‘MZ세대 번아웃, 누구의 책임인가’란 소제목까지 달고 있다. 오피스 ‘꼰대’에게 넌지시 던지는 경고인가 싶어 뜨끔하다. 노동과 일상에서 기운을 뽑아 먹히는 젊은 사람들이야 역사를 막론하고 언제나 있었을 것 같은데 왜 새삼스레 ‘번아웃’이 청년 세대의 키워드가 되는 것일까. 지금의 노동과 일은 과거보다 얼마나 더 어렵고 고되기에 젊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이유도 모른 채 번져나가는 인체 발화 미스터리를 만들어 내는가?

    고대 그리스의 이름난 철학자들은 노동이 정신을 야비하게 만들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행해야 하는 ‘덕(virtue)’을 가로막는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인간은 가능하다면 노동에서 벗어나 영원과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교육과 훈련에 전념하고 불가피한 물질적 생산 활동은 인간으로 인정할 수 없는 노예에게 전담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대가 흘러 천상과 제단 위에 자리한 신보다는 지상과 일상 위에서 움직이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정신문명이 융성하던 시절이 되자 노동은 새로운 개념이 되었다. 노동은 신과 자연의 섭리에 다가가는 데 방해되는 불가피한 조건이라기보다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성장하고 본질에 다다르는 데 자극이자 원천이 된다고 했다. 인간은 신이 아니지만 스스로 노동을 통해 세상에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창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창조적 노동을 보라.

    아주 오래전부터 노동은 기피해야 할 혐오 활동으로 인식되기도 했고 찬미해야 할 창조 활동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기피해야 하는가? 찬미해야 하는가? 지금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옛날 사람들의 노동을 둘러싼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가 어떻게 노동하고 있는지 따져볼 필요는 있다. 다 타버리기 전에 말이다. 오늘의 노동은 계약을 통해 유지한다. 하루에 몇 시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손에 쥐고 일하는지 약정하고 한달 동안 이를 어기지 않고 지켰을 때 보상을 얻게 된다. 이제는 핸드폰에 깔린 은행 앱에 매달 새롭게 도착하는 숫자가 내가 노동했음을 알린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몇 달만 이 숫자 알림을 받다 보면 더는 내 노동으로 성취하고자 했던 영향과 창조물이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왜 노동하는지에 대한 인간다운 물음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이런 상황을 자본주의 노동의 ‘소외’라고도 하고, 사회적 필요가 강제하는 ‘타율노동’이라고 비판하던데, 핵심은 내 노동과 일을 스스로 통제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노동 활동을 통제할 자유가 없다면 결국 외부의 강제를 따르게 되며 그래서 자유롭게 행동하고자 바랄 경우에는 노동 이외의 생활영역에서 그 같은 욕구를 충족시켜려 할 것이다. 노동과 유희가 분리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며 노동 이외의 것에서 참된 생활을 이루어 보려고 노력한다. 노동은 참되지 않은 벗어나야 할 상태가 되고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자 불씨가 된다. 현대의 작업장이 불타는 새로운 번아웃의 조건이 완성된다.

    먼저 세대로서 젊은 동료들이 일터에서 소진되고 조용히 퇴사를 선언하는 것이 무슨 캠페인 영상이나 챌린지 카드뉴스처럼 유행한다는 것은 낯선 일이긴 하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이 아직도 노동의 진짜 의미를 찾으려 노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의 억압과 강제를 감당하지 못하는 부조리에 대한 MZ들의 부지불식간 저항인 것은 아닐까? 찬미와 혐오가 동시에 작용하고 청년은 행동한다. 언제나 모순에 민감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 가장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보니 ‘번아웃 세대’와 노동법을 준수하라던 전태일의 타오름이 겹쳐져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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