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품격 관광도시’에서 짐이 있으면 택시에 못 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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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고품격 관광도시’에서 짐이 있으면 택시에 못 탄다고?

    ■권소담 경제팀 기자

    • 입력 2023.10.11 00:00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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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늦은 여름휴가에서 복귀하는 길이었다. 캐리어를 끌고 춘천시외버스터미널 정류장에서 택시를 타려 했다. 그런데 택시기사가 헐레벌떡 차에서 내리며 막아섰다. 그는 “트렁크에 자리가 없어 짐을 못 실으니 가스통이 안 달린 전기차 택시를 타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승차 거부’를 하는 것이냐 되묻자, 기사는 “손님이 (짐을) 실을 수 있으면 한번 실어보라”고 외려 으름장을 놨다. 실랑이가 이어지니 뒤에서 기다리던 다른 택시 기사가 합세해 승차 거부하는 기사의 편을 들었다.

    여유 있는 상황이었다면 탑승을 포기하고 다른 택시를 기다렸겠지만, 시카고에서 출발해 14시간 비행을 마치고 다시 인천공항에서 춘천까지 2시간 반을 달려온 기자에겐 ‘전기차 택시를 기다릴’ 체력과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미국 우버에는 잘만 싣고 탔던, 심지어 기사가 직접 들어주기까지 했던 짐을 왜 춘천 택시에는 실을 수 없는지 의문도 들었다. 택시 기사는 결국 트렁크 문을 열어주지 않았지만, 오기가 생긴 기자는 직접 뒷좌석에 짐을 싣고 택시를 탄 후 귀가했다.

    택시운송사업의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택시 운수 종사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여객의 승차를 거부하거나 여객을 중도에서 내리게 하는 행위’를 해선 안 된다. 춘천시 교통과 측에서도 짐을 이유로 승객의 탑승을 거절하는 행위를 승차 거부라고 해석했다.

    승차 거부를 하면 택시 기사에게 과태료 20만원 및 경고 처분이 내려진다. ‘춘천 택시’에 당한 기자는 춘천시가 잘 단속을 하고 있는지 알아봤다. 그랬더니 올해 1~9월 승차 거부에 대해 행정처분을 내리고 과태료를 부과한 것은 단 3건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민원이 들어와도 구두로 주의 조치를 주거나 협조 공문을 보내는 데 그쳤다. 춘천에 개인택시 1007대, 법인택시 695대가 있는 것과 비교해 실제 승차 거부로 인한 처분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택시 관련 민원을 신고하는 과정도 쉽지 않다. 서울이라면 다산콜센터(120) 등을 통해 간편하게 신고할 수 있지만, 춘천에선 피해자가 직접 시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조직도를 클릭하고, 직원 중 택시 불법행위 지도단속·행정처분 담당자를 일일이 찾아내 전화하는 방법밖에 없다. 승차 거부를 당했더라도 즉각적인 대응이 어려우니 민원 접수 건수도 적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춘천의 한 택시 정류장.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MS투데이 DB)
    춘천의 한 택시 정류장. 해당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사진=MS투데이 DB)

     

    서비스 산업 의존도가 높은 춘천은 ‘고품격 문화 관광도시’를 내세우며 관광객 유치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 춘천시가 2023 강원·춘천 세계태권도문화축제에 60여개국에서 5000여명 선수가 참여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게 불과 두 달 전이다. 또 외국인 관광객이 편리하게 관광지로 이동할 수 있도록 3시간에 2만원만 부과하는 외국인 전용 관광택시까지 운영 중이다.

    이런 노력에도 춘천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계속 줄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8월 기준 춘천을 찾는 외지인‧외국인 방문객은 1년 전보다 5.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4월부터 5개월 연속 감소세다. 여행객의 86.8%는 숙박 없이 당일 여행으로 일정을 끝내고, 1박 이상 하는 관광객은 전체 방문객의 13.2%뿐이다.

    짐을 가진 승객이 맘 편히 택시조차 타지 못하는 춘천에 ‘고품격 문화 관광도시’라는 수식어가 어울리긴 할까.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그에 맞는 교통 인프라와 서비스를 갖춰야 한다. ITX, 경춘선, 시외버스 등을 이용해 춘천에 방문하는 FIT(Foreign Independent Tour), 외국인 개별 관광객 유치를 위해선 더욱 그렇다.

    택시는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가장 처음 마주하는 지역의 ‘발’이다. ‘운이 나쁜’ 기자 개인의 경험으로 치부하기엔, 관광도시에서 택시의 역할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의미다. 관광도시 춘천이 제공하는 교통 서비스가, 그 이름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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