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여행기] 춘천-여수 도보여행, 내 생애 단 한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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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춘천-여수 도보여행, 내 생애 단 한번!

    • 입력 2023.10.06 00:00
    • 수정 2023.10.06 11:32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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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저는 평범한 사범대생들처럼 임용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선배의 추천을 받아서 교육 스타트업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운 좋게 준비 작업부터 거의 모든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저의 성격에 잘 맞았어요. 법원에 가서 법인을 설립하고, 변리사와 연락해서 상표를 등록하고,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서 채용 글을 올리고 지원자 면접을 보는 등 제가 그곳에서 1년간 온몸을 부딪치며 배우며 일했던 과정은 힘들었지만, 정말이지 짜릿한 경험이었습니다.

    스타트업이 자리를 잡고, 투자를 받아서 강남에 사무실을 열었습니다. 언론사와 협업을 하면서 우리 회사는 꽤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저는 초반의 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사교육 특성상 학부모와 학생들의 불안감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고, 강남 센터장이면서 상담을 맡은 저는 반드시 성적이 오른다는 일종의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월급은 2배 이상 받고 있었지만, 점차 일에 대한 흥미와 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여름이 막 시작되던 어느 날 고민 끝에 모든 것을 준비하고 만들었던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었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날 인터넷에서 어떤 기사를 봤어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노래가 참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그 기사를 보자마자 불현듯 저 노래를 직접 여수 밤바다를 보면서 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 직업도 없으니까 시간도 많겠다. 여수까지 걸어가면 좋겠다! 출발 지점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도시 춘천으로 정해야지!’ 이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결국 바로 그날 저녁 친한 친구가 있는 춘천으로 향했고, 다음날 새벽 배낭을 메고 여수로 출발했습니다. 총 800km를 걷는 이 도보여행의 이름은 ‘내 생애 단 한 번’이라고 정했어요. 지금, 이 순간은 단 한 번뿐이니까요.

     

    내 생애 단 한번. (사진=강이석)
    내 생애 단 한번. (사진=강이석)

    한여름에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온종일 걷는 것은 누구에게는 정말 고되고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저는 걷는 모든 순간순간이 행복하고 의미가 가득했어요. 특히 춘천에서 여수까지 걸어서 여수 밤바다 노래를 듣는다는 너무도 확고한 목표가 있고, 하루를 걸으면 그 하루만큼 목표가 달성된다는 구체적인 성과가 있으니까, 다리가 정말 아프고 물집이 잡혀서 터지는 고통이 있더라도 도보여행의 순간들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21일 만에 소박한 여수 구항이 보이는 돌산에 올랐고, 거기서 처음으로 버스커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노래를 들었습니다. 행복한 눈물이 흘렀고, 지금 느끼는 모든 감정이 감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찰나의 순간이 지나자 갑자기 너무도 허무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너무도 확고한 목표를 갖고 있다가 목표를 이루는 순간 그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기 때문일 거예요. 그때 느꼈습니다. 물론 꿈을 달성하면 너무 행복한 동시에 허무함이 밀려오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항상 마음속에 꿈을 지니고 있으면서 그것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요! 21일 동안 걸려서 걸어온 길은 돌아갈 때는 KTX를 타고 2시간 만에 갔어요.

    모두 다 빠름과 효율을 추구하면서 남들 시선을 의식하는 시대에 그렇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제 모습이 순간 뿌듯하다고 느꼈고, 불현듯 베리스모 오페라의 시초격인 까르멘의 작곡가 비제가 떠올랐어요. 비제는 비록 시기를 잘 못 타고나서 생전 빛을 못 봤지만,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면서 빛을 보고 싶다는 욕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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