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감언이설] 문화 그리고 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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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의 감언이설] 문화 그리고 산업

    • 입력 2023.10.05 00:00
    • 수정 2023.12.07 14:54
    • 기자명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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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최근에 영상 산업 진흥에 대한 어느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전통적인 영화 산업이 쇠퇴하고 있는 지금, 그래도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시각효과 부분은 여전히 유망한 분야이고, 이 산업을 해당 지자체에 유치해 지역 경제에 기여하자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공적 자금으로 스튜디오 같은 시설에 투자하자는 이야기도 나왔고, 관련 업체를 유치하는 방안도 언급되었다. 이런 논의는 사실 여러 지자체에서 반복되고 있는 내용이다.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을 끌어들이는 것에 비해, 영상 산업 유치는 왠지 모르게 쉬울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게다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서 지니는 영상 산업의 위상은 더욱 구미를 당기게 한다.

    그 핵심 논리는 이렇다. 돈이 되는 산업에 공공 자금을 투여해 인프라를 마련하고, 그것을 토대로 산업 환경을 조성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구 증가와 지역 경쟁력 상승과 경제 효과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엔 지자체에서 조심해야 할 부분 하나와, 유념해야 할 부분 하나가 있다. 먼저 조심해야 할 부분은 그 책임성이다. 꼼꼼한 시장 조사 없이, 지구력 있는 추진 인력 없이, 지속적인 지원 없이 뛰어 들었다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춘천은 이미 경험한 바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춘천만화영상도시’ 건립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고, 지금도 춘천애니메이션박물관이나 춘천애니메이션고등학교 같은 유산은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결국 현재 산업적으로 남아 있는 건 없다. 

    만약에 어떤 지자체에서 시각효과 중심의 영상 산업을 유치한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다. 최악의 상황은, 큰 돈을 들여 인프라를 구성했는데 일감을 가져오지 못하는 경우다. 이런 경우는 수많은 지자체들이 저지르는 오류다. 산업을 위해, 관광을 위해, 행정을 위해, 복지를 위해, 다양한 명목으로 건물을 짓고 구조물을 만들고 시설을 확충하지만 결국은 방치되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는 너무 많다. 이 과정에서 그것을 만들자고 주장했던 사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낭비된 혈세는 결국은 국민들의 피해가 된다.

    두 번째, 유념해야 할 사항은 단계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영상 산업을 이야기할 때 흔히 부산의 예를 많이 든다. 하지만 지금의 영광 이전에, 부산국제영화제가 있었고, 부산영상위원회가 있었다. 영화의 전당이 건립되었고, 현재는 영화진흥위원회와 영상물등급위원회 등이 부산에 있다. 3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하나하나 밟아 온 과정이 있었기에, 그 과정을 통해 부산 시민들의 삶 속에 영화가 스며들기 시작했기에, 시네마테크나 영상위원회나 미디어센터와 대학의 관련 학과들이 제 기능을 다했기에, 현재가 가능했던 것이다. 즉 문화가 있고 그 다음에 산업이 있다. 하지만 이른바 ‘산업론자’들은 종종 산업을 우뚝 세우면 문화가 만들어질 거라고 착각한다. 혹은 산업적 성과가 있으면 문화는 필요없다고 생각한다.

    문화 없이 만들어진 산업은 사상누각이다. 만약 춘천에서 영화를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예술영화전용관이든 미디어센터든 시네마테크든 영화 문화의 거점이 될 만한 대중적 공간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100년 넘게 강원도의 수부도시였던 춘천에, 이처럼 기본적인 문화 시설조차 없다니⋯

     

    ■김형석 필진 소개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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