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대학에서 한의학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데 첫 번째가 “한약을 먹으면 살이 찌느냐”란 질문이었습니다. 한의원에 와서 약을 지어가는 사람들도 진료실을 나가면서 꼭 한마디 하곤 하는데, 바로 “살 안 찌게 약 지어주세요”라는 말입니다.

왜 한약을 먹으면 살이 찌리라 생각하는지 한의사인 저도 이유가 궁금합니다. 예측 건대, 한약은 보약이라 먹으면 입맛이 좋아져서 살이 찐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한 예전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어릴 때 한약을 잘못 먹어 살이 쪘다는 우스갯소리가 이런 오해를 만들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약은 인체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 다시 말해 ‘한열허실’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즉, 찬 곳은 데워주고 뜨거운 곳은 식혀주고 부족한 부분은 보충해 주고 너무 넘쳐나는 것은 빼주어 인체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원상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뭄이 들어 논에 물이 부족하면 물을 대줘야 하고 장마철에 물이 넘쳐나면 빼주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한열허실을 거꾸로 치료하면 살이 찔 수도 있습니다. 논에 물이 넘쳐나면 물을 빼줘야 되는데 오히려 물을 가두어 놓는 식의 처방을 한다면 오히려 살이 찌게 됩니다. 그러므로 한약을 드실 때는 한의사의 진찰을 통해 올바른 처방을 받아야 합니다.

살을 빼려면 음식이나 약보다 식습관이 더 중요하므로 몇 가지 지켜야 할 기본 섭생법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식후에 졸음이 느껴져 앉거나 눕는 경우가 많은데, 식후에는 반드시 15~20분 정도 걸어야 합니다.

두 번째, 대개 바쁜 사회생활을 핑계로 아침은 거의 먹지 않고 저녁에 과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을 빼기 위해선 아침을 잘 챙겨 먹고 저녁 식사는 가볍게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늦은 밤 야식도 물론 피해야 합니다.

세 번째, 생냉물을 많이 마시면 안 됩니다. 살 뺀다고 생채나 생과일, 생수 등을 많이 드시면 위장에 부담을 줘 담음이 발생하므로 오히려 건강도 해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폭식을 피하고 밥을 천천히 꼭꼭 씹어 먹어야 합니다. 천천히 먹어야 과식도 피할 수 있습니다.

식단과 운동 모두 열심히 하는데 살이 안 빠진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경우는 담음병입니다. 담음이란 스트레스를 받거나 소화 기능이 약해 먹고 마신 음식물이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여 만들어진 노폐물이나 불순물입니다. 담음이 몸에 쌓이면 눈 밑이 어두워지며 속이 메스껍거나 소화가 잘 안됩니다. 또한 뒷목이 뻣뻣하며 머리가 맑지 않고 어지러운 증상들도 생깁니다. 특히 담음이 많으면 굶어도 살이 빠지지 않는데 담음을 없애주는 한약을 복용하여야 살도 빠지고 동반 증상도 개선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살을 빼는 데 도움이 되는 음식은 검은콩과 팥입니다. 콩과 팥은 몸속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해독작용, 이뇨작용도 있으므로 마른 사람보다는 살이 찐 사람에게 더욱 좋습니다. 녹차도 좋은데 녹차는 성질이 차므로 반드시 따뜻하게 마셔야 합니다.

예전에 모 강의에 나가서 녹차의 좋은 점을 말했더니 어떤 분이 자신은 녹차를 꾸준히 먹었음에도 고지혈증이나 체중 감량에 별 도움이 안 되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음식이나 차만 갖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음식이나 차로 치료가 되면 약이 필요가 없습니다.

또 뽕나무가지차도 도움이 됩니다. 특히 고혈압과 중풍 예방에 효과가 좋습니다. 참고로 뽕나무 가지는 반드시 봄에 잎사귀가 나기 전에 채취해야 하고 노릇노릇 볶은 후에 차로 마셔야 효과가 나며 반드시 살이 잘 찌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므로 마른 사람은 먹으면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