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택리지] 풍수지리로 보는 봄고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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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新택리지] 풍수지리로 보는 봄고을 이야기 

    • 입력 2023.10.02 00:01
    • 수정 2023.10.02 15:40
    • 기자명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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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의 가을 풍경. (사진=MS투데이 DB)
    춘천의 가을 풍경. (사진=MS투데이 DB)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춘천학연구소장

    춘천은 병풍을 둘러친 듯 산이 감싸고 세 개의 호수가 도심을 가로지르는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이다. 그래서 한 번도 안 와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다녀간 사람은 없다는 곳이 춘천이다. 수도권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하여 산과 물을 만날 수 있으며 어느 곳이든 쾌적한 공간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청명한 호수를 시원스레 전망할 수 있는 물의 도시이다. 호수 곳곳에는 도시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카페와 음식점이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춘천은 조선 시대 전국을 다녀보고 길지를 설명한 이중환의 「택리지」를 들먹이지 않고서도 요산요수(樂山樂水)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중환은 곡물 생산을 많이 해서 사람을 풍요롭게 하는 들(농경지)을 가장 중요시했고 여기에 산과 물의 형태와 상태를 보태어 길지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생산이 많아야지만 재화와 사람이 모여들고 이를 통해 물자가 대량 유통할 수 있어서 이득이 생기며 이로 인해 인심이 후하게 베풀어지는 곳을 길지의 기준으로 삼았다.

    춘천은 풍수의 관점에서 음을 상징하는 산맥이 백두산에서 용이 꿈틀거리며 흘러내려 대룡산 금병산 삼악산 화악산 용화산 청평산을 이루며 감싸고 있고, 양을 상징하는 물길이 천리 밖에서 소양강과 자양강(북한강)으로 흘러와 공지천 물과 합해져 신연강을 이룬다. 이로써 산과 물이 완벽하게 합해지는 음양교합을 이루고, 이곳의 중심에 봉의산과 봉추대(고산) 봉황대가 놓이는 전형적 배산임수의 명당을 이룬다.

     

    1919년 봉의산 일대 모습.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1919년 봉의산 일대 모습.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춘천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한가운데 신북읍으로부터 신사우동 그리고 중도로 이어지는 너른 들판이 이어져 있다. 여기에 주산인 봉의산은 수려하고 단정하며 아름답게 도심의 중앙에 위치하고 여기에 강물이 도심으로 흘러오고 흘러가며 산수의 정기가 모인다는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까다로운 조건도 갖추고 있어서 길지로서 완벽에 가깝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 신라가 춘천을 다스릴 때 춘천은 우수주(牛首州)로 불렸다. 이보다 앞선 고조선 말기에는 맥국(貊國)으로 불렸으며 이 당시 춘천의 중심지는 신북읍 발산이었다. 신라에 앞서 고구려가 춘천을 다스릴 때는 오근내(烏斤乃)로 불렸으니, 오근내가 실제 춘천의 첫 지명인 셈이다. 우수주는 우두산(牛頭山)에서 이름을 취해왔으므로 춘천의 중심지가 신북읍 발산에서 우두산으로 옮겨 왔음을 알려준다. 이후 수약주(673년) 삭주(757년) 광해주로 바뀌었고 고려 940년에 춘주(春州)로 불리면서 처음으로 봄 춘(春) 자를 이름으로 쓰게 되었다. 조선 1415년에 춘천도호부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춘천으로 불리고 있다. 

    사실 춘천(春川)에서 川(천) 자는 고을 규모를 나타내는 행정용어로 물줄기를 뜻하는 개울이나 내의 의미가 아니고 고을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 춘천을 ‘봄내’로 부르기보다 ‘봄고을’로 부르는 것이 사실에 부합한다. 그러므로 우리 고장에 물이 많아서 내 川(천) 자를 붙였다는 설명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다.

    시대 흐름에 맞게 새로운 ‘택리(擇里)’ 개념으로 보면 재화가 모이는 곳이 최고 길지가 되지만, 여기에 교육, 관광, 휴양 등의 개념을 추가하여 춘천 길지를 새롭게 선정해 보았다.

    첫째, 현대인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영혼을 달래며 휴식할 수 있는 행복 길지(幸福吉地, happiness good place)로는 북산면 청평산 고려정원과 남산면 구곡폭포와 문배 마을 그리고 서면 삼악산 등선 계곡이 해당한다. 세 곳에서 춘천 3대 폭포인 구송폭포, 구곡폭포, 등선폭포를 만날 수 있으며, 구곡폭포와 등선폭포는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발길이 닿지 않았을 정도로 어지러운 세상의 피난처로도 알려진 길지다.

    1996년 서면에서 바라본 중도 모습.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1996년 서면에서 바라본 중도 모습. (사진=춘천디지털기록관)

    둘째, 상서로운 봉황의 기운이 서려 있는 행정 중심지와 교육 길지(行政 敎育 吉地, administration core and education good place)로는 전국 최고의 길지에 자리한 도청과 시청을 비롯해 관공서가 몰려 있는 봉의산 일대와 종합대학이 자리한 교동과 효자동이 해당한다. 여기에 전국 최대의 박사를 배출한 서면의 박사마을도 교육 길지에서 빼놓을 수 없다. 봉황은 태평성대에만 나타나는 길조로 봉의산을 중심으로 관련 유적과 연관 지명이 분포하고 있어 길지임을 알려준다. 교동에는 한림대와 전통 공립교육 기관인 춘천향교가 있으며, 효자동에는 강원도 최대 국립대인 강원대는 물론 춘천 효자로 상징되는 반희언이 살았던 길지다.

    셋째, 사람 살기에 가장 적합한 주거 길지(住居吉地, living good place)는 시대별로 많은 변화를 보여왔다. 고대에는 신석기와 청동기 유물 유적이 대량 출토된 신북읍 신사우동 중도가 사람 살기에 가장 좋은 길지였다. 특히 신북읍과 우두 지역은 배가 드나들며 생선과 소금을 실어나를 수 있는 이점으로 조선 시대 내내 길지로 명성이 높았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도심 확장에 따라 석사동과 퇴계동이 최대의 주거 길지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근화동 캠프페이지가 어떠한 변신을 할 것인지에 따라서 주거 길지의 판도에 변화를 줄 것이다. 

    고대에는 주거 근처에 사후 공간인 무덤을 만들었기에 주거 길지가 곧 사후 길지였다. 그러나 현재는 매장문화의 변화 폭이 커서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지만,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춘천 최고의 사후 길지로는 서면의 장절공 신숭겸 묘소와 청풍부원군 김우명 묘소를 사후 길지의 가장 앞자리에 내세울 수 있다.

     

    춘천 구봉산 일대에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사진=MS투데이 DB)
    춘천 구봉산 일대에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사진=MS투데이 DB)

    넷째, 춘천의 멋과 낭만을 즐길 수 있는 문화관광 길지(文化觀光吉地, cultural tourism good place)로는 카페와 음식점이 늘어선 구봉산, 공지천, 소양강댐, 의암호 일대를 손꼽을 수 있다. 문화관광 길지는 주로 커피와 춘천지역 대표 먹거리 닭갈비와 막국수로 연결되어 있으며 도시의 야경과 사시사철 피어오르는 물안개와 아름다운 호수 경관을 즐길 수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춘천 지명 봄(春) 자에는 청춘과 낭만을 떠올리게 하면서 생명이 움트고 생동하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청정한 호수가 무려 세 곳이 있으며, 산이 병풍처럼 두르고 있어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함과 포근함도 느낄 수 있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삼산이수를 갖추고 세 개의 호수를 담아낸 도시는 찾아볼 수 없다. 말 그대로 하늘이 베푼 자연과 수천 년 봄의 따스한 이미지를 담고 있는 도시다. 여기에 정다운 이웃과 나누는 인심이 넘쳐나는 ‘봄고을’은 하늘이 점지한 세상 최고의 길지라 하더라도 지나친 말은 아니리라!

    ■허준구 필진 소개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소장
    -춘천시 문화도시 정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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