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감언이설] 축제의 진짜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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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의 감언이설] 축제의 진짜 성과

    • 입력 2023.09.21 00:00
    • 수정 2023.12.07 14:54
    • 기자명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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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김형석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춘천영화제는 무사히 5일의 여정을 마쳤다. 이젠 평가의 시간이다. 예상보다 많은 관객이 왔고, 새롭게 시도했던 부분들도 나름 호응을 얻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면만 놓고 성공이니 실패나 따지긴 힘들 거다. 평가는 항상 양면적이다. 영화제를 직접 만든 사람들의 평가가 다소 자족적인 면을 지닌다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좀 더 엄정하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척도는 종종 ‘숫자’가 된다. 몇 편의 영화를 상영했고, 몇 명의 관객이 영화제를 찾았고, 몇 명의 영화인이 영화제 기간에 춘천에 왔으며, 어느 정도의 티켓 수익을 얻었는지, 이런 사항에 대한 숫자들이 ‘성과 보고서’를 빼곡하게 채울 것이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숫자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못하며, 그러기에 정량평가의 빈틈은 정성평가로 채워야 한다. 9월 10일 일요일 저녁 8시 즈음, 올해 춘천영화제 마지막 상영 때였다. 작품은 ‘라스트 필름 쇼’. 꼬마 영화광의 영화에 대한 열정을 담은 인도 영화다. 이때 한 10대 관객이 티켓 부스에 편지 한 장을 전하고 갔다. 이런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영화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고3 학생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주저리주저리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ㅎㅎ 사실 학원을 제외하고는 평소에 영화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어서 무언가 마음에 응어리가 진 채로 살아가는 기분이었는데, 영화제를 개최할 만큼, 그리고 그 영화제에 참가할 만큼 영화에 진심(!)인 사람들이 제 곁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에 설레면서도 묘한 위로를 받았던 것 같아요. 아, 나만 영화를 사랑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예매하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굉장히 더디게 흘러갔답니다. 그래도 결국 오늘이 왔으니 괜찮아요! ‘라스트 필름 쇼’ 보고 열정 만땅 채워서 나머지 입시 보람차게 마무리해보겠습니다. 부디 내년엔 저도 스태프로 만날 수 있기를⋯!”

    5년 전 영화제 일을 시작한 후 지금까지, 족히 100명은 넘는 사람들에게 “영화제를 왜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것 같다. 그때마다 이런저런 대답을 했지만, 정답을 말하진 못한 것 같다. 올해 처음으로 춘천영화제 일을 하게 되면서도 ‘영화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는, 어떤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은 여전했다. 그리고 영화제가 저물어갈 즈음, 어느 학생이 준 편지는 어떤 ‘답’과도 같았다. 영화제는 영화를 꿈꾸는 자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 학생이 영화과에 진학하고, 내년엔 스태프로 영화제에 참여하고, 직접 영화를 만들고, 그 영화를 우리 영화제에서 상영하고, 장차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영화인이 될 수 있다면, 춘천영화제는 뿌듯할 것이다. 그 학생만은 아닐 것이다. 부끄러워 차마 편지까진 건네진 못했지만 남몰래 영화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춘천영화제가 ‘꿈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그래서 그들의 미래에 희망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영화제를 치르기 위한 매년의 고생이 전혀 힘들지 않을 것이다. 

    축제는 끝났고 이젠 내년 축제를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 예산부터 작품까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내년 영화제에 대한 확실한 것 하나는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꿈꾸는 그들을 응원하는 영화제가 될 것이다. 진심으로.

     

    ■김형석 필진 소개
    -춘천영화제 운영위원장
    -영화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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