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여행기] 저기 혹시 환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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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저기 혹시 환전 하셨나요?

    • 입력 2023.09.22 00:00
    • 수정 2023.09.23 00:01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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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교사

    ‘분명 뮌헨에서 환전하지 말라고 했지? 뮌헨에서 환전하라고 했었나?’ 초보 여행자의 머릿속은 유럽여행 정보들이 마구 뒤섞였다. 프라하로 출발하는 기차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초조해진 나는 크리스마스를 이틀 남긴 2006년 12월 23일, 뮌헨 중앙역에서 100유로를 체코 코루나로 환전을 하고야 만다.

    야간열차를 타고 12월 24일 새벽 프라하역에 도착했다. 그리고 길거리에 즐비한 환전소와 거기에 쓰여 있는 숫자를 본 후 어제 나의 선택이 실수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프라하에서는 100유로당 2800~2900코루나의 환율로 환전을 해 주고 있었고, 내가 어제 뮌헨에서 환전한 환율은 2,200코루나였다.

    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완전히 오판이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쓰였던 것은 나 빼고 아무도 뮌헨에서 환전을 안 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실수를 하면 그게 나만의 잘못이 아니란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곤 한다. 그래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다. “혹시 환전하셨나요?” 프라하역에 내리자마자 마주친 한국 남자에게 물었다. “아... 아니요.” 바츨라프 광장까지 걷는 내내 2000코루나 후반대의 환율이 적힌 전광판이 마음을 아프게 했고, 결국 나는 외국인에게까지 물어봤다. “혹시 환전하셨나요?”

     

    체코 프라하의 틴 성모 마리아 성당과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강이석
    체코 프라하의 틴 성모 마리아 성당과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강이석

    크리스마스 파티 약속 장소인 바츨라프 광장 기마상 근처 숙소에 체크인했다. 코루나를 내려고 하니 숙박비는 유로만 받는단다. 나는 얼떨결에 2000코루나를 유로로 계산하고 잔돈을 코루나로 받는다. 그렇게 나는 3000코루나를 얻게 되었다. 카를교 근처를 걸으며 프라하성 야경을 찍다가 약속 시간에 맞춰 바츨라프 광장 기마상 근처로 갔다. 3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간단히 인사를 한 뒤 분위기 좋은 펍에 들어갔다. 나는 역시나 여기에서도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혹시 환전하셨나요?” 뮌헨역에서 환전을 한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여는 상점이 거의 없어 돈 쓸 일이 없다며 모두 100유로나 환전한 나를 안타까워한다. 거기다 체코는 서유럽보다 물가가 엄청나게 싸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려 3000코루나를 갖고 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아직 환전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프라하에 있는 어느 환전소보다 좋은 환율로 재환전을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프라하의 ‘한국인 코루나 환전상’이 되었다.

    모임의 규모가 꽤 크다 보니 5~6명씩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언변이 좋고 활발한 한 남자가 계속 오스트리아 알프스 스키장에 같이 가자고 한다. 프라하역에서 만나자마자 환전했냐고 물어봤던 남자도 여기 있다. 영국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다 유럽여행을 하고 있다는 여자, 그리고 대구에서 온 두 여자, 여기에 나까지 여섯 명이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점점 저 남자의 말도 안 되는 유혹에 빠져들고 있었다.

    체코 프라하의 지하 펍에서 만난 여섯 명은 오스트리아 바트가슈타인이라고 하는 시골 마을로 스키 타러 가자는 약속을 했다. 한국에서도 아는 사람들끼리 ‘밥 한번 먹자'는 약속도 결국은 그냥 지나가는 게 대부분인데, 유럽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그것도 술자리에서 농담처럼 한 약속이 설마 어떻게 되겠어. 그때 나는 그 테이블에서 했던 즉흥적인 약속이 우리의 여행을 이렇게 다이나믹하게 만들지 참으로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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