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커먼즈필드의 사람들 : 카페 WLCM
  • 스크롤 이동 상태바

    [B급 센터장의 작은 도시] 커먼즈필드의 사람들 : 카페 WLCM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 입력 2023.09.18 00:00
    • 기자명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박정환 춘천사회혁신센터 센터장

    옥스퍼드 대학은 1096년에 문을 연 최초의 영어권 대학이다. 1650년쯤 되면 이 대학의 주변에 커피를 파는 커피하우스들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모르긴 해도 커피 한잔으로 졸음을 쫓아가면서 과제와 토론을 하는 학생들이 가득한 요즘 대학가 카페와 비슷한 모습이었던 것 같다. 신분사회였던 당시 영국에서 대학은 귀족이나 상류층만이 갈 수 있는 비싼 학습공간이었다. 근처 커피하우스는 달랐다. 신분이나 계급, 성별, 종교 등에 무관하게 누구나 1페니 정도의 커피값만 있으면 신문도 돌려 읽고 기웃대다가 지식인이나 과학자, 기업인들의 묵직한 토론에 끼어들 수 있는 값싼 학습공간이었다. 아직도 런던 사람들은 1페니만 있으면 공부할 수 있다는 뜻으로 카페나 커피하우스를 ‘페니 대학(penny university)’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페는 커피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상, 지식, 정보, 기회를 만나는 곳이었다. 어떤 사회학자는 이런 카페에서 벌어지는 ‘공론장’에서 의회와 정당의 기원을 찾기도 한다. 카페는 미래를 토론하는 민주 공간이 되었다.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조리를 그려낸 영화 ‘기생충’은 깐느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4개 부문을 수상하면서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K-컨텐츠 팬덤을 만들었다. 봉준호 감독은 담쟁이풀이 돌벽을 둘러감은 서울의 작은 카페 ‘서래수’에 앉아 영화의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한다. 과감한 상상력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세밀한 디테일까지 모두 이 카페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면 심각한 과장일까? 그렇지 않다. 커피를 사랑했던 청년 헤밍웨이는 스페인 팜플로나의 카페 ‘이루나’에서 카스티요 광장의 사람들을 보며 첫 장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썼다. 대작가가 된 이후에도 그의 작업실은 파리와 쿠바의 노상 카페였다. 누구나 한번씩 덕질 한다는 조앤 R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는 창문 넘어 고성이 보이는 에딘버러의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에서 모양을 갖추었다. 이혼하고 혼자 애를 돌봐야 했던 그가 이 곳을 선택했던 이유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던 카페가 많지 않아서였다고 하니 ‘노키즈존’이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인가? 어찌 되었든 카페는 컨텐츠를 생산하는 창의 공간이 되었다.

    커먼즈필드 춘천에는 ‘카페 WLCM’이 있다. 자음만으로 구성된 낯선 영문 상호이지만 그냥 웰컴이라고 읽으면 된다. 카페 웰컴. 주문한 음료를 밖으로 들고 나가도록 일회용 컵도 주지 않고 냅킨 한 장도 달라고 하지 않으면 먼저 내주지 않으니 불편할 수도 있겠다. 야박한 주인장 때문이 아니다. 불편해도 일회용품을 쓰지 않고 쓰레기를 적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다. 물론 텀블러를 가져가면 우리 지역의 재료로 만든 음료를 담아갈 수 있고 요청하면 재생용지로 만든 친환경 냅킨을 받을 수 있다. 환경이나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어른들만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지역 청소년들을 환대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캠페인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청소년을 위한 맡겨놓은 카페’는 이제 춘천에서 27개 카페가 함께하고 있고 지금까지 시민들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 기부한 음료만 2500잔이 넘어섰다. 카페 웰컴을 지키는 청년 스콘과 호머는 매일 저녁마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의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돕는다.

    롤링은 아이와 함께 입장할 수 있는 에딘버러의 카페를 어렵게 찾아 다녀야 했지만 춘천은 다르다. 카페 웰컴은 아이들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비롯한 비인간 존재들도 환영한다. “모두가 모두에게, 서로의 시작을 응원하고 작은 성공도 축하하는 환대의 공간” 카페 웰컴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