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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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 입력 2023.08.16 00:00
    • 수정 2023.08.16 10:42
    • 기자명 최광익 책읽는 춘천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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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학교는 문턱 높은 곳의 대명사였다. 교문을 들어올 때 학생과 학부모는 옷매무새 다듬기를 잊지 않았다. 가정통신문이나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아이의 미래와 직결된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권위가 있던 만큼 사회로부터 대접은 좋았다. 하지만, 대접받는 기관의 속성이 그렇듯, 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학교에서 경험한 이런저런 안 좋은 기억 몇 개씩은 간직하고 있다.

    최근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권침해’가 낯선 이유는 군림하던 학교문화에 대한 기억과 ‘향수’ 때문일 수도 있겠다. 시대가 변하고, 학생이 변하고, 학부모의 인식이 변해도 학교는 그들만의 타성에 젖어 학교 밖 세상 변화를 외면해 온 것도 사실이다.

    10년 후 한국의 모습이 된다는 일본의 상황은 어떨까. 2000년대 초반부터 교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일본은 새로 임용된 교원의 50%가 3년 안에 교직을 떠나는 상황에 이르렀다. 가르칠 사람이 없어 개학 첫날부터 자습을 하거나, 여러 개 반이 합동으로 체육수업을 하기도 한다. 교장 교감이 대신 수업을 들어가는 일은 일상화 되었다. 교사가 부족해 아예 주4일제 수업을 운영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미국 학교의 경우는 영화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많은 학교가 안전을 위해 교문에 무기탐지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교사연수에는 수업 중 신변의 위험을 느낄 때 탈출요령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학교는 변호사들의 일거리가 넘쳐나는 곳이 된 지 오래다.

    최근 전국의 학교에서 벌어진 교권침해 사건이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늘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 무리한 요구를 당연한 권리로 여기는 학부모, 민원 앞에서 교사의 요청을 외면하는 관리자, 높은 도덕성과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적 기대 속에서 교사들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 자기효능감, 직장만족도, 안전감은 최저 수준이다. 고립된 섬처럼, 홀로 되어 하루의 무사귀가를 고심하는 교사들에게 교육의 질은 언감생심이다.

    무엇이 학교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교권추락, 학생인권조례, 악성민원 등을 말하기 앞서, 학교 구성원 각자의 역할을 규정하는 계약의 부재를 들고 싶다. 몇 해 전 유네스코가 <함께 그려보는 우리의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을 발표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학교의 존재이유, 학교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 분쟁에 따른 처분 등이 분명하게 명시된 새로운 계약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학교구성원들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한 조항은 없다. 억압된 체제에서 해방되어 분출하기 시작한 학부모의 권리의식을 지금의 학교는 감당할 근거도, 능력도, 경험도 없다. 계층이동의 사다리 역할을 해 온 학교교육을 지켜보았던 학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새로운 계약이 필요한 이유다.

    새로운 계약이 이루어진다면 계약에 위반되는 행동은 제재를 받을 것이다. 혹자는 학교가 소송으로 얼룩져 교육의 본질이 훼손되고 혼란이 가중될 것을 우려한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처럼 애매모호한 규정과 일방적인 인내와 타협을 요구하는 환경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분쟁에 따른 소송은 학교 구성원들에게 새로운 학교문화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학교문화는 어느 일방이 참아야 했던 과거나 현재의 모습에서 한 발 짝 더 나아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통하는 것과 통하지 않는 것이 판례를 통해 누적된다면 합리적인 행동양식이 구축될 것이다. 

    학생이 잠을 자도, 규칙을 지키지 않아도, 막 말을 해도 교사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 쉽지 않은 현실은 우리 사회가 교육을 포기했다는 방증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교사 개인의 능력이나 철학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학교에 온 학생들이야말로 가장 큰 피해자가 된다. 얼마 전 만난 학교 밖 청소년 한 명이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학교에 다니는 거 시간 낭비에요.” 학교를 규율하는 새로운 계약이 절실한 시점이다.

     

     

    ■ 최광익 필진 소개

    - 책읽는춘천 공동대표
    - 前 화천중·고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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