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는 교사를, 부모는 자식을 가르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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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부모는 교사를, 부모는 자식을 가르친다

    [기자수첩] 최민준 정치행정팀 기자

    • 입력 2023.08.16 00:00
    • 수정 2023.08.17 00:03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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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민준 정치행정팀 기자
    최민준 정치행정팀 기자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격언이 있다. 아니, 이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학생이 선생에게 폭력을 가하고 학부모는 협박을 일삼는 현실에서 스승에 대한 존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사실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표현은 다소 과하다. 필자는 학창 시절을 보내며 교사들의 폭력 행위를 보거나 또는 직접 겪기도 했다. 기합은 일상이었고 화를 이기지 못해 젖살도 채 빠지지 않은 학생들을 발로 차거나 따귀를 때리는 교사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 스승의 그림자는 두려움이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폭력적인 방식이 사라지고 건전한 교육 환경이 마련되는 듯했다. 휴대폰 등 전자기기의 발달로 가혹 행위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고, 학생의 권리를 신장하는 ‘학생인권조례’도 생겼다.

    그러나 한 쪽이 내려가면 다른 쪽이 올라가는 시소처럼, 이번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교사가 자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일부 학생들은 스승을 향한 비아냥과 껄렁한 농담을 일삼았다. 항체가 생기듯 잘못에 대한 인식은 무뎌졌고 일탈의 범위도 점점 커졌다. 학부모들은 제 자식이 그럴 리 없다며 감싸기 바빴다.

    그러면서 학교와 가정은 모두 교육의 역할을 잃었다. 교사는 교육할 힘을 잃었고 학부모들은 자식을 바라보는 객관성을 상실했다.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성에 차지 않는 행동을 하면 학부모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하루가 멀다고 전화해 항의하거나 민원을 제기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욕설과 협박, 폭력도 흔한 일이 됐다.

    그렇게 몇 년간 곪디 곪은 교권 추락의 실태는 지난달 서울 서이초 교사의 사망 사건 이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생을 마감한 교사는 사망 전 정신과 상담에서 “학부모가 소리질러 속상했다”고 했다. 춘천에서도 극성 학부모에 시달려 정신과 진료까지 받은 한 초등 교사의 사례가 본지 취재 과정에서 발견됐다.

    문제가 격화되자 정치권은 앞다퉈 학생인권조례 개정에 나서고 있다. 학생인권조례로 학생의 권한이 너무 강해져 교사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시금 권한을 손봐야 한다는 논리다. 한쪽의 권한을 축소해 반대쪽을 올리는 시소의 원리가 또다시 작동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단순히 교사와 학생 관계를 마치 균형잡듯 저울질하는 오류는 다시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수년 전 같은 방식의 해결책이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우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교육 현장과 인권단체들은 흑백 논리에 갇힌 법 개편보단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친다.

    교사를 대하는 학부모와 학생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라지만, 교사 또한 누군가의 자식이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의 부모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왕의 DNA’를 가진 자식은 없다.

    교사들은 여전히 학생들을 먼저 생각한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렸던 춘천의 모 교사는 기자에게 “학생들은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아주 소중한 존재들”이라고 말했다. 그 길잡이인 교사들에 대한 존중의 문화가 만들어질 때 건강한 미래와 사회가 형성될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한다. ‘학부모’는 교사를 가르치려 들지만 ‘부모’는 아이를 가르치려 한다는 걸.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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