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원짜리 아파트에 ‘50년짜리 주담대’의 등장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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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억원짜리 아파트에 ‘50년짜리 주담대’의 등장이라

    ■ [칼럼] 권소담 경제팀 기자

    • 입력 2023.08.03 00:00
    • 수정 2023.08.04 00:04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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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소담 경제팀 기자
    권소담 경제팀 기자

    춘천에서 ‘역대 최고 분양가’를 찍은 삼천동 레이크시티 아이파크가 평균 경쟁률 27.75대 1로 청약 일정을 마감했다. 3.3㎡당 1548만원이라는 가격에도 관심이 뜨거웠다. 속초는 한술 더 뜬다. 이달 1일 1순위 청약에 나선 힐스테이트 속초 84㎡ A형 6~15층은 기본 분양가 5억4897만원으로 3.3㎡당 1651만원 수준이다. 발코니 확장에 각종 옵션을 넣으면 6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어느새 강원지역 신축 아파트 가격은 수도권과 어깨를 견줄만큼 올랐다. 실제로 두 단지와 분양 시기가 비슷한 경기 평택 호반써밋고덕신도시 3차 84㎡ 기본 분양가는 5억470만원에 형성됐다. 삼성전자 공장이 들어서고 청년 인구가 유입되는 산업도시 평택과 비교해, ‘소비도시’ 성향이 강한 강원지역의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역전한 셈이다.

    강원지역 근로자의 평균 소득 수준을 생각하면 아파트값이 ‘너무 비싸다’는 곡소리가 절로 나온다. 2021년 연말정산 기준 춘천지역 직장인 평균 연봉은 세전 3613만원. 필수 옵션을 포함하면 5억6600만원인 아이파크 84㎡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위해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15년을 모아야 한다. 평균 연봉(3266만원)이 더 낮은 속초는 6억원짜리 아파트를 사는 데 18년치 연봉이 필요하다.

    2016년 기준 춘천지역 평균 연봉이 3120만원이던 시절. 청약으로 분양가 3억원짜리 ‘e편한세상 한숲시티’를 사기 위해서는 9년치 연봉이면 충분했다. 이제 이 수준의 분양가는 ‘꿈의 가격’이나 다름없다.

    분양가 전액을 현금으로 낼 수 있는 부자는 많지 않다. 소득이 높은 서울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야 한다. 소득 대비 아파트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서민들은 ‘빚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다. 과거엔 ‘청약’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신축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는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당첨되어도 걱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간 소득 가구가 대출받아 중간가격의 주택 구입할 때의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수다. 이 지수가 낮을수록 부담이 적고, 높을수록 부담이 가중됨을 의미한다. 올해 1분기 강원지역 주택구입부담지수는 40.7이다.

    기준금리 인상에 이자 부담이 커지고 집값이 정점에 올랐던 지난해 3분기(44.5)보다는 낮아졌지만, 강원지역 집값 상승기 직전인 2020년 1분기 해당 지수가 29.0까지 내렸던 것과 비교하면 ‘내 집 마련’을 위해 감당해야 할 고통은 더 커졌다. 충북(38.3), 전북(37.2), 경북(34.4), 전남(33.8) 등 다른 도 단위 지역과 비교해도 강원지역에 실거주해야 하는 주민들의 주택 구입 부담이 더 크다.

     

    강원지역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수도권 지역보다 비싼 수준으로 형성된 가운데 시중은행에서 50년짜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하는 등 금융비용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강원지역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수도권 지역보다 비싼 수준으로 형성된 가운데 시중은행에서 50년짜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출시하는 등 금융비용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영끌’ 해야 하는 수요자들의 고심은 더 깊어졌다. 집값 상승으로 대출해야 할 원금 규모가 커지자, 최근 은행권에서는 만기 50년짜리 주택담보대출 상품을 선보였다. 원금 분할 기간이 길어 매달 은행에 갚을 돈이 줄어들기야 하겠지만, 부담이 줄진 않는다. 이자의 총액만 늘어나고, 평생 빚만 갚다 끝날 수도 있다.

    금융 비용이 늘어나면, 가계에서 자유롭게 소비하고 저축할 수 있는 처분가능소득은 줄어든다. 은행 빚에 매인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떨어지고 소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대출 상환 도중 집값이 하락한다면 빚을 갚을 수도, 집을 팔 수도 없고 진퇴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공존한다.

    빚의 무게를 감당하면서까지 모두가 ‘새 아파트’에 목을 매는 이유도 생각해야 한다. 부족한 공공 주택, 보증금을 떼일 수도 있다는 전세 사기에 대한 공포,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에 대한 욕구, 이 모든 것이 ‘내 집’에 대한 갈망을 만들어 냈다.

    규제를 통해 집값을 무조건 내려야 한다고, 또는 집값이 이대로 고공행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부동산 시장의 호황과 불황을 논하기 전, 매달 계산기를 두드리며 은행에 갚을 돈을 고민하는 우리 이웃들의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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