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의 부동산 투시경] 부동산 투자는 주식보다 왜 당당하지 못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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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갑의 부동산 투시경] 부동산 투자는 주식보다 왜 당당하지 못할까

    • 입력 2023.07.31 00:00
    • 수정 2023.07.31 11:13
    • 기자명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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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우리나라 사람들은 부동산을 보는 눈이 다분히 이중적이다. 한국에서 부동산은 밖으로 드러내놓고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숨어서 몰래 투자하는 대상이다. 요즘 시대를 자기 PR 시대라고 하지만 부동산 투자는 PR 대상이 되지 못한다. 광장보다는 밀실 개념이다. 보양식으로 비유하면 부동산은 삼계탕보다는 보신탕과 같은 존재다. 우리나라에서 보신탕집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대로변보다는 이면도로의 뒷골목에 감춰져 있다. 보신탕을 권할 때도 “보신탕을 드십니까”라고 묻지 않고 “탕 하십니까”라고 은어를 쓴다. 넓은 마당에서 온 가족이 함께 먹는 음식이 아니라 뒷방에서 모여 몰래 먹는 음식이다.

    부동산은 주식과 함께 ‘재산 불리기 시장’의 양대 축이다. 삼성전자와 강남 아파트는 같은 블루칩에 속한다. 하지만 사회적 시선은 천양지차다. 공중파 TV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대놓고 추천해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도체나 세계 경제의 흐름을 잘 아는 전문가 대접을 받는다. 하지만 강남 특정 아파트를 사라고 하면 큰일 난다. 투기꾼이라는 시청자들의 비난이 쇄도할 뿐만 아니라 방송사로부터 출연 금지 처분을 받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당시 초저금리로 주식시장이 달아오르자, 금융당국은 묻지마 투자에 대한 주의보를 울렸다. 하지만 수위는 높지 않았다. 당장 쓸 학자금, 전세보증금이나 빚을 내 투자하지 말고 여유자금으로 투자하라는 교과서적 경고 정도다. 주식시장이 과열되어도 자금 출처를 조사하겠다는 얘기는 없다.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정책적 마인드가 다른 셈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그룹 펀드는 나와도 강남 아파트 펀드는 나오기 어렵다. 제도적인 측면보다도 강남 아파트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장벽이 더 크게 작용한 탓이다.

    집 가진 사람들이 고통받던 2012년 하우스푸어 사태 당시 싸게라도 아파트를 처분하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금융권에서 이들 아파트를 사들여 펀드나 리츠로 만들려고 했으나 실무진 차원의 검토 끝에 중단했다. 하우스푸어에게 퇴로를 열어주고 리츠나 펀드에 참여한 투자자에게는 수익을 안겨주는 적절한 방안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서민들이 사는 집으로 투자 상품화하면 사회적으로 거부감이 클 것이라는 반대 의견이 많았다. 집이 하나의 투자수단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공개적으로 투자 자산화하는 데는 인식의 장애가 남아 있는 셈이다.

    사실상 투자의 원금손실 가능성 측면에서 보면 주식이 훨씬 위험한 자산이다. 주변에서 주식이나 선물에 투자했다가 돈을 탕진한 사람들이 한둘인가. 그런데도 더 늙기 전에 노후를 대비해 주식을 차곡차곡 사서 모으라고 말하면 전문가로 칭송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 들어 역세권 아파트를 사서 월세를 받으라는 조언은 ‘남의 시선’ 때문에 공개적으로 할 수 없다. 그런 말은 조용히 귓속말로 오가는 사적 영역의 대화에 속한다.

    부동산 투자는 마이크를 대고 말하기에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영역이다. 당당한 제도권보다는 은밀한 비제도권 영역에 더 가깝다. 물론 집 문제는 세입자의 주거 안정도 있으니, 주식과 동급으로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부동산 편견은 집은 사고파는 대상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위와 도덕이 깊게 스며있는 것도 적지 않은 요인인 것 같다. 어찌 보면 주거 자본주의가 횡행하면서 상흔을 입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아서일지도 모른다.

    부동산업이 당당한 산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단기적으로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거래 과정이 좀 투명화되고 종사자들의 윤리 의식도 높아지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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