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② 출국 일주일 전인데⋯출장심사는 ‘프리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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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② 출국 일주일 전인데⋯출장심사는 ‘프리패스’

    출장 임박해 계획서 제출
    30일 이전 등록 규정 위반 72%
    보고서도 표절, 오타까지 베껴도 통과

    • 입력 2023.06.22 00:02
    • 수정 2024.01.02 09:27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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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시청 체육과 A주무관은 2022년 5월 22일부터 5박 7일간 캄보디아 출장을 간다는 계획서를 제출했다. 서류를 등록한 시점은 5월 12일, 출국일이 10일 남은 시점이었다.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회는 출장을 떠나기 3일 전에서야 결재를 완료했다.

    2019년 9월 21일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로 7박 9일간 출장을 간 행정지원과  B주무관도 출발 12일 전인 9월 9일 계획서를 올리고, 이틀 뒤인 11일 심사를 통과했다. 이렇게 출장 시기가 임박한 시점(1~2주 전)에 계획서를 제출한 경우는 전체 50건 중 총 16차례에 달했다.

    통상 해외출장을 떠나기 한 두달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현지 기관 방문 등을 조율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비행기표 먼저 끊고 심사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출장 대부분은 사안이 시급한 출장도 아니고, 정책 탐방이나 견학 등 미리 준비가 가능한 출장이다.

    ‘춘천시 공무국외출장 규정’에 따르면, 출장 주관부서의 장은 출국 30일 전까지 공무국외출장 계획서와 그 밖에 필요한 증빙서류를 첨부해 심사위원회에 심사를 요청해야 한다. 그러나 이 규정을 위반한 출장은 50건 중 36건으로 72%에 달했다. 갑자기 잡힌 일부 출장을 제외하더라도 절반 이상이 규정을 위반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시의회 공무국외출장 심사위원인 강대규 변호사는 “출장 심사를 받기도 전에 비행기표부터 먼저 끊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이라면 앞뒤 순서가 잘못된 행정이다. 이러니 사전에 출장의 허가여부를 판단하는 심사위원회가 제 구실을 못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출장계획서도 허술했다. 일정만 대충 적어놓고는 출장의 목적이나 내용은 현장 탐방, 견학, 벤치마킹을 설명하는 문장 한두 줄 적고 말았다. 출장의 타당성을 점검하는 ‘사전검토 체크리스트’를 첨부하지 않은 계획서도 23건으로 절반에 가까웠다.

    체크리스트는 출장의 목적과 연관된 정책 현안이나 효과성 등을 검토하는 항목 15개로 구성됐다. 이 서류가 빠진 계획서도 많았지만, 첨부한 23건 중에서도 항목 대부분을 ‘해당사항 없음’으로 무성의하게 작성한 보고서도 17건이나 됐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결재에, 스스로 무력해진 심사위원회

    출장 심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주된 이유는 ‘비행기표 먼저 끊는’ 관행이 이어져 온 탓으로 풀이된다. 만약 심사에서 부결이라도 나온다면 취소 수수료 등 이에 따른 부담을 출장자가 온전히 져야 해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출장 목적이 부실하든, 필수 서류가 빠져있든 문제없이 통과됐다. 위원장을 포함한 심사위원 8명 전원은 모든 출장계획에 반대나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민선 7기 때도, 8기 들어서 심사위원이 바뀌어도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졸속 심사 행태는 마찬가지였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11월 22일 팀장 2명과 주무관 3명이 3박 4일간 다녀온 대만 출장이다. 출장자들은 대형 야시장 견학과 체험활동을 통해 야시장 조성을 위한 방향성 등을 제시하겠다는 목적을 내세웠다.

    그런데 출장 일정은 고궁박물관, 101전망대, 해양공원 등 관광지 중심으로 짰다. 야시장과 상권 탐방 등 목적에 맞는 일정은 2~3곳에 불과했으며, 기관 방문도 도매시장 방문 후 간담회가 전부였다. 이 출장은 출국 일주일 전인 11월 15일 서면으로 심사를 받았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통과했다.

    대만 출장을 다녀온 한 주무관은 “중정기념당이나 101전망대를 다녀온 것도 다 관광활성화를 위한 목적”이라며 “시장을 몇 군데 다녀왔는데 이름은 다 기억 못한다”고 말했다. 출장 전 언제 비행기표를 예약했는지 묻자 “며칠전 일도 기억 안 나는데 작년 연말 일을 어떻게 다 기억하냐.  e티켓으로 왔을 것 같은데 옛날 지난 메일은 다 삭제를 한 상황”이라고 했다.

    출국 30일 이전에 출장신청을 해야하고, 월 1회 심사위원회 대면 심사를 열어야 하는 규정도 소용없었다. 심사위원장이 서류 보완이 필요하면 주관부서 장에게 보완을 요구하고, 기간 내 제출하지 않으면 심사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이 있지만, 이런 과정조차 이뤄지기 어려운 시스템이었다.

    춘천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2년째 심사위원을 맡고 있는 홍문숙 경제진흥국장은 “저 같은 경우는 출장 담당자에게 어떤 용무로 출장을 가는지 물은 다음 계획서 요약본을 읽고 서명한다. 비행기표를 미리 끊었다가 심사 통과 못하면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데 무책임하게 일을 진행하진 않을 것이다. 사전에 여행사와 협의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사가 느슨해진 또 다른 원인은 서면으로만 진행된 위원회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월 1회 대면회의가 원칙인데도 규정에 ‘다만, 경미한 사안이거나 긴급한 사유로 회의를 개최할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경우 등을 서면으로 심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어 스스로 심사기능을 무력화시켰다.

    춘천시가 지금까지 서면심사만 했다는 의미는 ‘모든 출장이 경미하거나 위원들의 시간이 없어서’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결국 사전심사가 심사가 아닌 결재를 거치는 행정 절차로만 전락한 셈이다.

    최호택 배제대 행정학과 교수는 “서면 심사만 했다는 건 그냥 심사를 형식적으로만 하겠다는 의도다. 이렇게 가는 출장은 형식적으로 가서 사진만 찍고 오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냐. 요즘 공직사회 분위기와도 맞지 않은 구태”라고 지적했다.

     

    베끼고 표절하고⋯귀국보고서 부실해도 ‘프리패스’

    허술한 계획서와 부실한 심사는 엉터리 출장으로 이어졌다. 출장을 다녀온 뒤 제출하는 귀국보고서는 인터넷을 베끼는 건 예삿일이고, 오래된 자료를 짜깁기하면서 오탈자까지 복사해 붙여 넣었다.

    2019년 9월 미국과 캐나다를 8박 10일 일정으로 다녀온 뒤 제출한 보고서 내용을 보면 시애틀을 설명하면서 ‘태평양과 인접한 항구 도시 시애틀은’으로 시작해 한 문단을 인터넷 뉴스 내용을 통으로 옮겨 넣었다. 라스베가스, 로스앤젤레스의 도시개요도 언론사 기사를 참고했다.

    보고서의 ‘다) 미국 조세 제도 (1) 개관’으로 적은 설명은 무려 19년 전인 2004년 한국조세연구원이 내놓은 ‘주요국 조세제도’ 보고서의 ‘서언’ 내용을 그대로 갖다 썼다. 미국지방세의 기원과 변천은 1장 반을 복사했다. 총 28쪽 가운데 질의응답 4쪽과 표지, 일부를 제외하곤 모든 내용을 인터넷과 과거 보고서를 짜깁기 했다.

    2019년 미국과 캐나다를 다녀온 한 주무관은 귀국보고서에 A여행신문 기사(왼쪽)와 19년 전 한국조세연구원 보고서(오른쪽)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었다.(그래픽=박지영 기자)
    2019년 미국과 캐나다를 다녀온 한 주무관은 귀국보고서에 A여행신문 기사(왼쪽)와 19년 전 한국조세연구원 보고서(오른쪽)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붙여 넣었다.(그래픽=박지영 기자)

     

    ‘‘‘2019년 미국과 캐나다를 다녀온 같은 주무관이 2013년 앞서 다녀온 출장자 보고서의 오타까지 복사한 내용(왼쪽), 2022년 영국과 네덜란드를 다녀온 춘천시 공무원은 같이 다녀온 울산시 공무원의 보고서 내용 중 소감에서 ‘한국도시’를 ‘춘천시’로만 바꿨을뿐 나머지는 거의 베껴썼다.(그래픽=박지영 기자)
    ‘‘‘2019년 미국과 캐나다를 다녀온 같은 주무관이 2013년 앞서 다녀온 출장자 보고서의 오타까지 복사한 내용(왼쪽), 2022년 영국과 네덜란드를 다녀온 춘천시 공무원은 같이 다녀온 울산시 공무원의 보고서 내용 중 소감에서 ‘한국도시’를 ‘춘천시’로만 바꿨을뿐 나머지는 거의 베껴썼다.(그래픽=박지영 기자)

     

    출장자의 의견을 담아야 하는 시사점과 소감은 앞서 2013년 강원도청 주관으로 다녀온 공무원의 결과 보고서 내용을 똑같이 베꼈다. 심지어 ‘납부하는 등의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는 문장에서 ’납부하느‘의 오타까지 그대로 복사했다. ’모색하고 있고 있다’는 오류도 수정 없이 썼다.

    보고서를 작성한 C주무관은 “다른 지자체 공무원과 같이 작성했고, 제가 참고한 내용이 조세연구원 보고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방문국 개요는 다른 데 것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출장을 함께 다녀온  D주무관은 보고서를 같이 작성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지자체 합동 출장의 경우 국외출장연수정보시스템에 먼저 올라온 다른 지자체의 보고서를 참고해 작성하기도 했다.

    2022년 11월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8박 10일간의 출장을 다녀온 뒤 17쪽 분량의 귀국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출장은 전국 지자체 공무원 10명이 다녀왔다. 춘천시 출장자가 보고서를 등록한 시점은 12월 28일, 앞서 15일 등록한 울산시 보고서와 비교해봤더니 울산시의 내용과 어미, 부사 정도만 다르곤 일부 문단을 줄이는 식으로 정리했다.

    이 출장을 다녀온 주무관은 “울산시 보고서는 보지 않았고, 직접 작성했다”고 해명했다. 어떻게 시사점까지 똑같을 수 있냐고 묻자 “출장이 끝나면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본인의 의견을 밝히고, 느낀점을 공유한다. 동일한 내용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취재진이 재차 확인한 결과 시사점과 느낀점은 누가 봐도 같은 문장이었다. 시사점에서 ‘한국도시’를 ‘춘천시’로 바꾸거나 ‘느껴짐’을 ‘느껴졌음’으로 바꿨을뿐 나머지는 거의 동일했다. 울산시는 25쪽, 춘천시는 17쪽 분량으로 내용만 줄었다. 다른 지자체와 합동으로 다녀온 출장의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보고서 실태가 이런 데도 춘천시는 아무런 문제 없이 넘어갔다. 규정에 ‘출장자는 귀국한 날부터 30일 이내에 보고서를 작성해 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검토조차 제대로 안 한 것으로 보인다.

    안혜경 주무관은 “귀국보고서는 내부 결재를 맡는다. 표절검사는 따로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행태는 춘천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출장자에 따라 개인이 직접 공을 들여 작성한 보고서도 여럿 있었지만, 적지 않은 지자체 공무원들이 마치 보고서를 품앗이하듯 비슷한 내용으로 적어 올렸다. 10명이 다녀오면 같은 보고서만 10개가 등록되는 셈이다.

    (3편에서 계속)

    [김성권·이현지 기자 ks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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