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②어린이회관 매각 10년 "동심 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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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②어린이회관 매각 10년 "동심 잃어 버렸다"

    [어린이회관 매각 10년] ②사라져버린 자산
    어린이회관 건립 취지 어디에
    어린이행사·교육 찾기 어려워
    축제·미술 등 문화의 요람 실종

    • 입력 2023.06.08 00:03
    • 수정 2024.01.02 09:27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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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회관은 건물 자체로서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는 건축문화 유산이었다. 한국 건축의 거장 고 김수근 건축가가 1980년 건축한 것으로 그의 자연주의 공간 미학이 잘 드러나는 건물이다. 호수 앞에 내려앉은 한 마리의 새를 형상화한 것으로 지역 어린이 누구나 이곳에서 꿈을 키웠다. 

     

    1990년 옛 어린이회관 강당에서 춘천인형극제가 열리고 있다. (사진=박동일 문화통신 대표)
    1990년 옛 어린이회관 강당에서 춘천인형극제가 열리고 있다. (사진=박동일 문화통신 대표)

    ▶어린이회관의 가치와 역할

    춘천시는 KT&G와의 매각 협의 과정에서 상상마당을 당초 어린이회관 건립 취지에 맞게 운영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현재 상상마당에서는 과거 이곳이 어린이회관이었다는 역사를 확인할 관련 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찾기 어려운 상태다.

    “그러니까 춘천사람들은 여기를 ‘어린이회관’이라고 부른다 이거지?⋯여기가 이렇게 변하고 난 다음에 온 세대는 전혀 모를 테니까. 춘천에서 나고 자란 90년대생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여기서 그림 한 번 안 그려본 어린이는 거의 없을걸.”-「내가 사랑하는 춘천, 그곳」中

    지난해 춘천지역출판연대가 펴낸 「내가 사랑하는 춘천, 그곳」에서 윤한 소양하다 대표가 친구에게 어린이회관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상상마당이 어린이회관의 취지를 이어받은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공간도 교육도⋯갈 곳 잃은 어린이

    상상마당 춘천의 설립 목적은 ‘지역을 포함한 문화예술 활성화에 기여’였다. 설립에 따른 기대효과로는 ‘교육문화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하고 아동·청소년의 창의력과 상상력 발달 기여 등을 꼽았다. 또 어린이회관의 최초 설립 목적을 살려 어린이와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키즈페스티벌’ 등 공연 프로그램을 매년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관 당시 KT&G상상마당 총괄사업본부장은 한 인터뷰에서 “어린이를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최초로 키즈 페스티벌을 기획해서 대한민국의 모든 어린이가 춘천에 와서 문화를 즐기고 향유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개관 초기 교육사업에도 비중을 두며 문화예술 교육프로그램, 청소년 창의 예술교육, 크리에이티브 워크숍 등을 펼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개관 3년여 만에 교육팀이 해체되면서 개관 초기와 같은 수준의 교육사업은 진행되지 않고 있다.

     

    시민과 관광객들이 춘천 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2013 춘천마임축제를 즐기고 있다. (사진=박동일 문화통신 대표)
    시민과 관광객들이 춘천 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열리는 2013 춘천마임축제를 즐기고 있다. (사진=박동일 문화통신 대표)

    ▶사라진 지역 문화의 요람

    어린이회관은 어린이를 위한 공간일 뿐 아니라 지역 문화를 탄생시킨 요람이기도 했다.

    춘천인형극제가 처음 시작된 곳이 어린이회관이었고 춘천마임축제도 ‘도깨비난장’의 새로운 장을 이곳에서 열었다. 또 다른 지역의 대표 예술축제인 춘천연극제의 전신인 춘천국제연극제도 이곳에서 태동했고 춘천무용축제, 춘천공연예술축제 등 지역 대부분의 축제가 어린이회관을 통해 시민을 만났다.

    어린이회관에서 수많은 축제를 열었던 문화기획자 박동일 문화통신 대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린이회관을 전국 최고의 야외공연장을 보유한 문화 공간으로 생각했다”며 “춘천의 공연 축제들이 모두 다 이뤄진 예술의 메카로 지역 축제의 모든 것이 출발한 곳”이었다고 회고했다. 

    춘천미술인의 염원으로 마련한 춘천미술관이 시작된 곳으로 양대 미술 단체가 처음 운영한 전시공간이 존재한 곳이기도 하다. 지역 미술인들 사이에서는 상상마당 자리에 시립미술관이 들어섰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미술협회 춘천지부(이하 춘천미협)는 1995년 어린이회관 구석 작은 방에 ‘춘천미술관’을 열고 전시와 지역 미술인 교류 장소로 사용했다. 이듬해에는 ‘일요미술학교’를 열어 어린이와 성인을 대상으로 한 미술교육을 진행했다. 미술관으로 기능이 충분할 것으로 판단되자 당시 전태원 춘천미협회장은 어린이회관을 춘천시립미술관으로 만들자고 춘천시장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실내는 전시실, 교육공간은 물론 복도에도 작품을 걸 수 있는 구조였고, 야외에서는 조각 등 야외전시와 사생이 가능한 최적의 장소였기 때문이다. 춘천미술관이 옛 춘천중앙교회로 이전한 이후에는 민족미술인협회 춘천지부가 갤러리 ‘스페이스 공’을 운영했다. 

    전태원 전 회장은 “현재까지도 시립미술관 건립 부지를 찾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가능만 하다면 옛 어린이회관만 한 곳이 없다”며 “과거 강원도립미술관 건립 내정 부지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미술관을 짓기에 좋은 장소”라고 말했다. 이어 “어린이회관은 미술은 물론 소극장 인형극, 야외 공연 등이 열렸던 춘천의 명소로 이미 복합문화공간이었다”며 “지금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고 장사만 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춘천의 유일한 등록미술관이 상상마당에 있다.

    2017년 상상마당은 ‘아트센터’ 명칭을 ‘KT&G 상상마당 춘천 미술관’으로 변경했다. 옥천동에서 춘천미술관을 운영하는 춘천미협은 유사중복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시민에게 혼동을 주고 지역 미술계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반발,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옥천동에 있는 춘천미술관은 옛 교회를 리모델링한 것으로 열악한 시설과 운영비 부족으로 미술관 등록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춘천시립미술관은 시장이 건립 의지를 밝혔음에도 부지를 확정 짓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2004년 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춘천공연예술제 모습. (사진=박동일 문화통신 대표)
    2004년 어린이회관 야외무대에서 열린 춘천공연예술제 모습. (사진=박동일 문화통신 대표)

    ▶사라진 지역 문화예술 단체 참여

    지역 문화예술 단체가 기존대로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최웅집 춘천공연예술제 총감독은 매각 이후 상상마당에서 예술제를 열 수 없었다고 회상한다. 최 감독은 “춘천시나 다른 위탁기관이 운영했을 때는 사실상 무료로 이용했는데 상상마당 매각 이후에 터무니없는 비용을 요구해 공연을 할 수 없었다”며 “야외무대를 사용하려면 직원들이 추가 근무를 해야 하니 600만~800만원에 가까운 비용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또 “야외공연장도 무용이나 연극 공연을 하기 어려운 형태로 리모델링해서 공연장의 장점이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춘천시는 어린이회관을 매각하며 어린이를 중심으로 한 문화공간 외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는 방안이 마련됐다고 논란을 잠재웠다. 또 해지사유가 발생하면 매매계약을 해제할 안전장치를 명시한다며 모두를 안심시켰다. 시는 춘천시민과 강원도민의 땅을 매각한 책임을 지고 잘 활용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춘천시청의 담당 업무를 살펴보면 이런 역할을 맡은 담당 부서가 없어 사실상 방치하는 상황이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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