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의 연예쉼터] MBC 떠나는 김태호 PD,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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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의 연예쉼터] MBC 떠나는 김태호 PD, 행보가 주목되는 이유

    • 입력 2021.09.22 00:01
    • 수정 2021.09.24 00:07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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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서병기 헤럴드경제 대중문화 선임기자

    지난해 필자는 한국 예능계 두 명의 천재인 나영석 PD와 김태호 PD의 서로 다른 예능 스타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중 한 명인 김태호 PD가 최근 20여년간 근무하던 MBC에 사의를 표명했다.

    예능계로서는 엄청난 뉴스다. ‘무한도전’ ‘놀면 뭐하니?’ 등 MBC 간판 예능을 이끌어 온 김태호 PD의 사의 표명에 대해 MBC가 입장문을 발표할 정도다.

    김태호 PD의 사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리고 그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이 두 질문은 요즘 변화하는 미디어 생태계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김태호 PD 같은 거물이 지상파 한 곳에서 고정된 상태로 예능을 만들기에는 무대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과 콘텐츠 기업이 만나는 게 불가피해지면서 더더욱 다양한 형태의 예능 콘텐츠가 제작되고 있다. 그 정도로 방송 콘텐츠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김 PD가 지난 9월 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보면 그 심정의 일단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무모한 불나방으로 끝날지언정, 다양해지는 플랫폼과 급변하는 콘텐츠 시장을 보면서 이 흐름에 몸을 던져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미래에 대해 확실히 정한 건 없습니다. 다만 오래 몸담은 회사에 미리 얘기하는 게 순서일 것 같아 지난 8월 초, MBC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김태호 PD의 이 글은 자신도 이제 변화와 적응이라는 길을 가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의 선택은 한 예능 PD의 회사 이적이 아닌 시대의 변화를 상징한다.

     

    김태호 PD는 방송국 PD 중에서 수십억대의 스카우트 제의를 가장 먼저 받은 사람이다. 많은 예능 PD들이 지상파를 떠나 케이블, 종편, 콘텐츠 기업 등으로 갈 때도 MBC를 지켰다. 이명한, 나영석, 신원호 PD가 KBS에서 CJ ENM으로 이적해 tvN 콘텐츠를 만들고 김시규, 이동희, 여운혁 PD가 지상파에서 종편으로 갈 때도 김태호 PD만은 이적하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13년 동안 이끌면서 ‘국민 예능’ 칭호를 부여받은 ‘무한도전’이라는 레전드 예능 때문이었다.

    하지만 방송국 예능 PD, 즉 크리에이터들이 네트워크 경제에 기반한 플랫폼 기업과 콘텐츠 기업에 가는 게 보편화된 시점에서 김태호 PD도 20년 근무한 MBC를 떠나는 것이다.

    김태호 PD는 MBC 내부에서 콘텐츠 관련 사업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무한도전’ 관련 굿즈 중 달력 하나의 매출만 봐도 그의 콘텐츠 비지니스 감각은 충분히 증명된다. MBC는 지금은 많이 달라져 외부와의 협업 등으로 열린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김태호의 역량을 충분히 담아내고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주기가 쉽지 않았다.

    김태호 PD는 ‘무한도전’ 전성기에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중에 프로덕션을 차려 ‘무한도전’ 스핀오프물(spin-off, 파생콘텐츠)을 하나씩 제작하고 싶다고. 그리고 최근 MBC 내부에서는 김태호 PD의 사의 표명을 “다양한 포맷과 다양한 플랫폼을 원하는 크리에이터로서의 목마름”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하면 김태호 PD의 앞으로의 거취와 행보는 다른 방송국이나,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업을 하는 플랫폼 기업으로 이적하거나, 또는 스스로 독립프로덕션을 차려 OTT나 지상파, 케이블 방송국에 납품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플랫폼마다 차별화된 콘텐츠를 만들어 공급해야 하는 시대다. 한 가지 기준에서 콘텐츠를 평가하는 시대가 아니다. 지상파에서는 욕먹을 콘텐츠가 OTT로 오면 괜찮은 콘텐츠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SBS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는 지상파에 편성돼 논란이 됐지만, 그것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인간수업’은 넷플릭스에 편성돼 논란이 되지 않았다.

    예능도 훨씬 다양한 장르와 성격의 콘텐츠를 만들어 그에 어울리는 플랫폼과 방송국을 찾아가야 한다. 김태호 PD는 이런 다양한 예능을 만들어내는 데 최적화된 PD다. 그는 예능 PD로서 평균치 웃음을 만들어내는 대중성과 덕후적 발상에 의한 매니악(maniac) 하고 기발한 감성을 두루 다 가지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세상에 나쁜 콘텐츠 아이디어는 없다. 단지 콘텐츠와 플랫폼의 궁합이 안 맞았을 뿐이다’라는 얘기를 후배들과 해왔던 터라, 여러 플랫폼에서 다양한 콘텐츠로 그걸 증명하고 싶다는 마음만은 분명합니다.”

    김태호 PD는 이제 지상파라는 판을 벗어나 훨씬 더 다양해지고 커진 예능판에서 마음껏 실력을 발휘하길 바란다. 그게 대한민국 콘텐츠 산업을 더욱더 발전시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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