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농촌 유학’ 인기 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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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농촌 유학’ 인기 치솟는다

    도시 아이의 농촌 유학, 학부모에 인기
    도교육청 지원 프로그램 매년 확대 추세
    춘천 송화초 학생 절반은 농촌 유학생
    작은 학교와 농촌 살리는 효과에도 주목

    • 입력 2024.12.22 00:08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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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이 운영하는 농촌 유학 프로그램 인기가 심상치 않다. 농촌 소멸을 막자는 취지로 마련된 제도가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는 건강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학부모들의 소망과 맞아떨어지면서다. 서울 등 도시에서 강원으로 유학 온 초‧중학생 수는 작년 2학기 33명에서 올해 1학기 134명, 올해 2학기 171명, 내년 1학기에는 250명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모집 경쟁률도 높아졌다.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유학 보낸다는 역발상이 도시 문제와 농촌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묘수가 될 수 있을까. <편집자 주>

     

    춘천 사북면 송화초 학생들이 교내에서 트리클라이밍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춘천 사북면 송화초 학생들이 교내에서 트리클라이밍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친구와 함께 먹고 자고 배우는 농촌 생활

    올해 2학기 춘천 사북면 송화초등학교 학생 46명 중 22명은 도시를 떠나온 ‘농촌 유학생’이다. 이 중 19명은 도교육청 지원으로 유학 중이다. 내년 3월에도 10명의 유학생이 송화초로 전학할 예정으로, 현재 한창 모집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송화초 유학생들은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기숙사 또는 홈스테이 농가에서 지낸다.

    이달 6일 별빛산골교육센터는 송화초로 전학을 결정하기 전 시설을 둘러보기 위해 찾아온 방문객들로 분주했다. 안채은(11‧경기 성남) 양도 부모와 함께 이날 춘천을 찾아 고층 빌딩과 아파트 대신 비닐하우스와 인삼밭이 들어선 주변 환경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학부모인 안준영(41)‧맹지영(41)씨는 농촌 유학을 고려하는 이유에 대해 “경쟁과 압박감에서 벗어나 마음껏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농촌 유학생들은 여름에는 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가을에는 밤을 줍는 농촌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
    농촌 유학생들은 여름에는 텃밭에서 감자를 캐고, 가을에는 밤을 줍는 농촌 체험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송화초 유학생들이 도시 학생들과 가장 다른 점은 스마트폰 없이 생활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무료로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방과후 프로그램을 경험하고, 학교를 마치면 모두 별빛산골교육센터에 모여 전통놀이를 하거나 우쿨렐레, 댄스 수업을 듣는다. 주말에는 배구를 배우거나, 계절에 따라 감자를 캐고, 밤을 줍고, 김장 체험을 한다.

    생물학자를 꿈꾸는 이형건(11) 군에게 농촌 생활은 꿈을 키우는 시간이다. 숲에서 동식물을 관찰하고, 도감을 찾아보며 장래희망에 한 발짝 다가가고 있다. 형건 군은 “서울에서는 우리 반 아이들하고만 어울렸는데, 송화초에서는 전교생의 이름을 알고 인사하며 지낸다”고 했다. 운동을 잘하고 몸 쓰는 것에 능한 심재헌(11) 군과 다양한 체험의 기회를 원했던 황예솔(11) 양도 농촌 생활을 즐기고 있다. 춘천 내 중학교 진학을 앞둔 장승희(12) 군은 자연 속에서 지내며 평소 앓고 있던 비염도 치유했다.

     

    서울에서 송화초로 유학 온 심재헌, 이형건, 장승희, 황예솔 학생은 농촌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서울에서 송화초로 유학 온 심재헌, 이형건, 장승희, 황예솔 학생은 농촌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사진=권소담 기자)

    ▶경쟁 치열한 ‘강원 농어촌 유학’

    농촌 유학은 도시 학생이 6개월 이상 시골 학교로 전학을 가 자연과 농촌 공동체를 체험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은 지난해 시범 사업으로 농어촌 유학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했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호응이 워낙 좋아 교육청 농어촌 유학 프로그램은 참여 학교와 학생 수 모두 급격히 늘고 있다. 농어촌 유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강원지역 학교는 역시 지난해 2학기 6곳에서, 올해 1학기 15곳, 올해 2학기 23곳으로 확대됐다. 내년에는 도내 12개 지역 41개 학교에서 진행 예정이다. 유학생 역시 같은 기간 33명, 134명, 171명, 250명(예정) 등으로 대폭 증가했다.

    강원지역 농촌 유학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경쟁률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1학기 신규 신청 학생의 경쟁률은 1.52대 1 정도였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내년 1학기 모집이 진행 중인데, 1차 신청 기간이 끝난 뒤에도 추가 모집이 없느냐는 문의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서울연구원 조사에서 서울지역 학부모 10명 중 4명은 ‘농촌 유학을 보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자연적인 식생활’(31.1%), ‘부모와 떨어져 생활하며 자립심 향상’(26.3%), ‘농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자연 생태 교육’(25.9%) 등을 농촌 유학을 보내고 싶은 이유로 꼽았다.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의 농어촌유학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으며 참가 학생과 운영 학교수가 확대되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특별자치도교육청의 농어촌유학 프로그램이 큰 인기를 얻으며 참가 학생과 운영 학교수가 확대되고 있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유학센터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송화초 학생들은 매달 생활비 90만원을 지불한다. 이 중 60만원은 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아, 30만원만 자부담하면 된다. 유학생들은 2주에 한 번 가정으로 돌아간다. 아이가 아프거나 생일인 날은 학부모가 센터를 찾아오기도 하고, 사정이 있는 경우 도시에 있는 집에 자유롭게 다녀올 수 있다. ‘엄마샘’이 집안일과 생활 전반을 돌보고, 농가에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호자 역할을 한다. 도내 다른 지역에서는 가족이 함께 해당 지역으로 이주하는 가족 체류형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겨울 방학 캠프’를 통해 본격적인 농촌 유학 전에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생활을 경험해 볼 수도 있다. 기숙사를 운영하는 ‘엄마샘’ 이순미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농촌유학센터장은 “학부모들이 처음에는 다소 걱정하는데, 한 달만 지나면 ‘우리 아이가 스스로 이런 것도 해요?’라며 놀라고 만족해한다”며 “아이들에게는 자연 속에서 친구들과 함께 지낸 1~2년의 행복한 경험이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

     

    송화초 농촌 유학생들은 별빛산골교육센터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사진=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송화초 농촌 유학생들은 별빛산골교육센터를 중심으로 생활한다. (사진=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관계 인구’ 농촌 유학생, 지역 소멸 막는다

    인구 절벽 위기를 앞둔 지역 입장에서 농촌 유학은 학령인구 감소를 극복하고 마을을 활성화하는 해결책으로 부상했다. 송화초에 유학 중인 6학년생 일부는 도시로 돌아가는 대신 춘천 내 공립 대안학교인 가정중 진학을 선택했다. 이런 프로그램 덕에 송화초가 위치한 사북면의 10~14세 인구는 지난해 70명으로, 2017년(72명) 이후 처음으로 늘었다. 송화초와 별빛산골교육센터의 농촌 유학 모델을 공부하기 위해 지난달 일본에서 지자체(유자마치 교육 미래 프로젝트)와 중간지원조직(지역‧교육 매력화 플랫폼)이 춘천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달 일본 유자마치 교육 미래 프로젝트와 지역‧교육 매력화 플랫폼은 농촌 유학 사례를 공부하기 위해 춘천을 방문했다. (사진=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지난달 일본 유자마치 교육 미래 프로젝트와 지역‧교육 매력화 플랫폼은 농촌 유학 사례를 공부하기 위해 춘천을 방문했다. (사진=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윤요왕 춘천별빛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도시 아이들에게 차별화된 교육과 행복한 생활을 제공하는 게 우선이고, 그 파생 효과로 농촌의 가치를 알리고 지역 소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며 “마을 교육 공동체와 작은 학교 살리기, 농촌 유학 등을 종합한 모델이 강원의 지역 특수성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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