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은 상중도 끝자락에 솟아있는 해발 98.9m인 봉우리다. 춘천의 평균 해발 고도가 99m인 점을 고려하면 고산은 춘천의 평균 높이보다도 낮은 셈이다. 특히 1967년 의암댐 준공으로 의암호에 상당 부분이 잠기면서 그 위용이 다소 감소했다.
고산만큼 많은 지명을 부여받은 곳도 드물며, 이름마다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어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크다. 고산은 고산대-부래산-(부래봉)-봉추대-옥산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고산(孤山)은 우두 벌판으로부터 하중도에 이르는 공간에 홀로 우뚝 솟아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의 ‘고산’이란 시에서 “고산의 안개 낀 물결에 조각배를 띄우니 층층 깎아지른 절벽에 나그네 시름 완전히 사라지네”라고 소개, 문헌에 등장하며 대표적 지명이 되었다.
고산대는 ‘고산’에 한자 대(臺)를 붙여 만든 지명으로, 대는 사방을 둘러볼 수 있는 전망대란 의미를 지닌다. 고산은 높지는 않지만, 춘천 중심의 너른 평지에 솟아 있어 전망대로서도 훌륭하다. 옛 문헌에 “고산대에 오르면 춘천을 감싸고 있는 큰 산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두 벌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면 신매리와 서상리는 물론 현암리와 하중도 끝자락까지 손에 잡힐 듯 시야가 트여 있다”라고 했다.
부래산(浮來山)은 금성군 금강산에서 떠내려왔다는 이야기에 근거해 붙여진 지명이다. 부래산은 한자 그대로 떠내려온 산으로 금강산에서 떠내려왔기에, 금성 고을에서 해마다 세금을 거둬갔다. 이에 춘천 고을의 입장에서는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어느 날 고을 원님의 어린 자제가 금성 고을의 관리에게 ‘부래산은 우리에게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라’라는 묘안을 내어 골칫거리를 해결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후 부래산은 떠내려왔다는 뜻의 부(浮)가 부자를 뜻하는 부(富)의 의미로 전환되기도 하였다. 이에 재산을 불려주는 장소로 알려지며 경제적 부를 가져다주는 희망의 대상으로 떠오르기도 하였다.
춘천에는 봉황과 연결된 지명이 봉의산(鳳儀山)을 비롯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봉의산, 봉황대, 봉추대가 춘천의 봉황 관련 대표 지명이다. 봉의산에는 봉황이 날아와 춤을 추어 태평성대를 칭송한다는 의미가, 봉황대에는 봉황의 쉼터라는 의미가 깃들여 있으며 봉추대에는 봉황의 새끼가 깃들어 산다는 뜻이 깔려있다.
봉의산·봉황대·봉추대는 삼각형 모양으로 소양강을 품는 형국이다. 마치 이는 봉황이 아침 햇살 퍼지는 소양강을 품으며 태평성대를 희망하는 모습과 같다. 소양강은 자양강과 합해져 신연강을 이루고 삼악산을 지나며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삼산이수의 전형을 완성한다. 삼산이수는 자연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상징하는데, 삼악산 케이블카를 타거나 삼악산과 의암봉에 등반하며 자연이 선사한 최고의 선물을 놓칠 수 있으랴!
옥산(玉山)은 조선시대 성현이 지은 ‘황정명농정기’를 통해 알려졌다. “하나는 소양강(昭陽江)이고 (중략) 다른 하나는 모진강(母津江·자양강)으로 (중략) 두 강 사이에 홀로 솟구쳐 올라 기괴하게 보이는 산이 옥산(玉山)이다”라고 기록하여 옥산이 곧 고산임을 밝혔다. 아울러 궁금증으로 남겨졌던 ‘옥산포’의 지명 유래도 알게 되었다.
고산은 둥근 그릇을 엎어놓은 듯하며 옥빛처럼 푸르른 산이다. 이 청산에는 참으로 많은 이름이 붙여졌으며, 많은 이름 속에는 춘천인의 삶과 춘천의 과거·현재·미래를 담고 있다. 고산은 어린 시절 미래를 꿈꾸게 했던 희망의 장소이자 세상에 실망했을 때 현재를 위로받던 장소였으며,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숨어 살만한 낙토이기도 하였다.
지금도 고산의 저녁노을은 사시사철 아름답다. 고산에 지는 저녁노을이 ‘소양 8경’의 하나인 만큼 이곳에 올라 호반 춘천의 아름다운 모습에 취해 춘천 추억 쌓기에 흠뻑 빠져보면 어떻겠는가!
■ 허준구 필진 소개
-전 춘천학연구소장
-강원도 지명위원회 위원
-춘천시 교육도시위원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