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검은 옷 입은 교대생⋯“학생보단 학부모와 잘 지내야 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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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 검은 옷 입은 교대생⋯“학생보단 학부모와 잘 지내야 된대요”

    춘천교대 4일 학내 추모 집회 개최
    대학생, 일반인 등 200여명 참여
    교생 실습 경험한 고학년들 함께
    "짧은 시간 동안 현장 심각성 느껴"

    • 입력 2023.09.06 00:02
    • 수정 2023.09.11 13:33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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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보다 학부모랑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단 얘기를 들었어요.”

    4일 오후 7시께 춘천 석사동 춘천교대 캠퍼스 안에서 열린 서이초 교사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춘천교대 4학년생 서모(23)씨는 이렇게 말했다. 서씨는 최근 교생 실습으로 나간 학급의 담임교사에게 이런 조언을 듣고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4학년생이라 임용시험을 준비하겠지만, 교생 실습을 나갔다 온 뒤로는 굳이 교사를 해야할지 고민이 든다”고 털어놨다.

    서울 서초구 초등학교에서 극단적 선을 한 교사의 49재 추모일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춘천교대 캠퍼스 안에는 검은색 상하의를 입은 교대생들로 넘쳐났다. 오후 7시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하나 둘씩 학생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인파가 몰려들었다.

    전국 교사들이 거리로 나선 공교육 멈춤의 날, 춘천 예비 교사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 집회는 전국 교육대학 동시다발 학내 추모 집회 계획에 따라 4일 오후 7시 전국 교대 8곳에서 동시 개최됐다. 춘천교대 총학생회도 교내에서 집회를 열고 약 한 시간 가량 추모 행사를 가졌다. 집회에는 교대생과 교수 외에도 일반 시민까지 200여명이 나왔다.

     

    4일 오후 춘천교육대에서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집회가 개최됐다. (사진=최민준 기자)
    4일 오후 춘천교육대에서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집회가 개최됐다. (사진=최민준 기자)

     

    이날 만난 교대생 중 적지 않은 인원이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적이었다. 특히 교생실습을 다녀온 예비 교사들이 느낀 교육 현장은 더욱 심각했다. 교생실습은 예비교원의 역량 강화를 위해 4주간 진행되는 교육 과정이다.

    얼마전 실습을 나갔던 서모씨는 “담임교사에게 특정 학부모의 전화가 자주 와 담임 선생님이 1시간 넘게 자리를 비운 걸 봤다”며 “수업을 잘하는 것보다 학부모와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교육 현장이 심각하게 망가져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임용시험을 보긴 하겠지만, 혹시나 떨어지면 재도전하진 않을 것 같다. 꼭 교사를 해야된다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4학년생 김모(23)씨 민원 대처를 위해 학부모와 상담할 때 무조건 녹음을 하고 수업 장면 녹화도 필요하다는 조언을 듣기도 했다. 김씨는 “선배 교사들이 현장에서 겪고있는 아픔에서 나온 말이라 더 무겁게 느껴졌다”며 “교권이라는 게 교사의 권리가 아닌 교육을 위한 권리라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교육환경이 악화되다보니 교사를 꿈꾸던 학생들의 중도 이탈도 급증하고 있다. 교육부의 대학알리미 공시자료에 따르면 춘천교대 중도 탈락자는 2020년 25명에서 2021년 32명, 2022년 52명으로 증가 추세다. 이 중 자퇴로 나간 학생은 같은 기간 22명, 29명, 40명으로 학교를 그만 둔 학생 대부분이 자진해서 나갔다.

     

    4일 오후 춘천교대에서 열린 추모 집회엔 대학생, 시민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사진=최민준 기자)
    4일 오후 춘천교대에서 열린 추모 집회엔 대학생, 시민 등 200여명이 참여했다. (사진=최민준 기자)

     

    집회에 참석한 배성제 춘천교대 교수회 회장(강원교총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설문조사에서 교대 학생 절반이 임용 포기를 고민한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교육 환경에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며 “현장에서 현직 교사들이 최선의 노력을 하는 만큼 대학생들이 흔들림 없이 대학 교육에 임해 꼭 좋은 교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 집회 주최를 맡은 김주연 춘천교대 부총학생회장은 “많은 학우가 한날한시에 모였다는 건 그만큼 같은 마음을 가졌다는 의미”라며 “교사들의 손발을 묶지 않고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같은 날, 강원자치도교육청에서 600명의 교사가 집회를 여는 등 전국에선 교사 12만여명이 대규모로 연가, 병가 등을 내고 집회에 동참했다.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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