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위기가 심각한 이유는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산업 발전에 대한 로드맵이 실종된 데 있다. 육동한 시장이 제 1공약으로 내건 ‘첨단지식 산업도시’마저도 위태로운 상태다. 첨단지식 산업도시의 핵심인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 조성사업은 인허가 절차가 밀리고 예산 삭감에 흔들리면서 속도가 나지 않는다.
수열에너지는 해수나 하천수에 저장된 열에너지를 건물의 냉·난방, 농가나 산업체 등에 필요한 열원으로 이용하는 기술이다. 춘천은 소양강댐 냉수의 수열에너지를 매개로 데이터센터 등을 유치해 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한다는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시작부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는 당초 지난 3월부터 수열에너지 융복합 클러스터 투자선도지구에 대한 조성공사에 착공하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인허가 과정이 지연되면서 7월로 일정이 미뤄졌다. 상반기 착공에 들어가려던 클러스터 접속도로 확·포장공사도 인허가 절차가 덜컥거리면서 하반기로 연기됐다.
수개월씩 일정이 미뤄지다 보니 목표로 했던 준공 시점도 밀리고 있다. 춘천시 디지털산업과 관계자는 “공사가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될 경우 2027년 12월 준공 예정이지만, 각종 변수에 따라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더 늦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클러스터 조성을 위한 토지보상이 원활하지 못해서다. 강원도에 따르면 현재 확보한 토지는 45% 정도다. 올 상반기 중 70~80%까지 확보한다는 방침이지만, 강제수용 절차까지 완료하려면 빨라야 올 연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수열에너지 사업 과정에 육동한 시장의 역할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사업의 주체가 춘천시인데도 업무 지원은 강원도가 더 적극적이다. 이 때문에 수열에너지 사업의 근간인 소양감댐이 있는 춘천보단 도내 다른 시·군에 데이터센터를 넘겨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실제 최근 강원도와 한국전력 강원본부가 서울에서 수도권 소재 기업을 대상으로 데이터센터 기업 유치 설명회를 열었더니 동해, 삼척, 홍천, 횡성, 양양 등 다른 도시들도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국내 한 대형 포털은 데이터센터 후보지로 춘천이 아닌 동해를 방문해 현장 실사를 벌이기도 했다. 춘천이 소양강댐을 보유한 이점을 전혀 활용하지 못하는 셈이다.
▶ 창의적인 도시 구축, 예산 깎이고 특별자치도법에 발목
창의적인 도시를 구축하겠다는 전략도 지지부진하다. 시는 춘천의 문화적 특성과 자원을 활용해 로컬 크리에이터의 성장을 지원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시의회에서 관련 예산이 2억원에서 1억원으로 깎였다. 지난달 모집한 로컬 크리에이터 팀 역시 당초 계획한 20곳에서 10곳으로 반토막 났다.
첨단 기술 개발을 위해 ‘연구개발특구’ 지정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은 강원특별자지도 출범 이후를 기다려야 한다. 강원특별자치도법 개정안에 연구개발특구 지정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이 포함됐지만, 특별법이 통과하더라도 실제 특구 지정을 위해서는 중앙정부와의 협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연구개발특구는 첨단지식 산업도시 조성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지만 아직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다.
지경배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업정책은 계획만으로 되지 않는다. 지금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강원도나 정치권과의 연결고리가 튼튼하지 못한 데 있다. 공무원도 적극적이지 않다 보니 시장도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원주는 반도체, 강릉은 천연물 바이오 추진 ‘착착’
이런 춘천의 상황은 원주와 강릉이 각각 산업단지 조성 전략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원주는 이미 반도체 산업 인재 육성을 위해 지난달 강원테크노파크 원주벤처공장에서 반도체 교육센터를 열고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과 실습을 담당할 공간도 마련했다. 특성화고와 연계를 통해 인력을 양성한다는 구체적인 인재 공급 계획까지 세웠다. 글로벌 반도체 부품기업인 인테그리스코리아는 원주 문막 공장에 대한 추가 증설에 나서는 등 관련 기업의 실질적인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천연물 바이오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선정된 강릉시는 태스크포스(TF) 조직을 꾸려 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 등 연구원과 지역 대학 산학협력단 등과 함께 ‘국가산단 실무협의체’를 구성했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