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우리 고향이 돌아올 수 있을까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이순원의 마음풍경] 우리 고향이 돌아올 수 있을까

    • 입력 2022.02.20 00:00
    • 수정 2022.02.20 11:31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제목을 쓰고 보니 좀 이상하군요. 우리는, 혹은 나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이렇게 물어야 올바른 질문이겠지요. 그런데 나는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서 고향이 우리 곁으로 돌아올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얼마 전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갈 때마다 보고 느끼는 일이지만 우리나라 농촌 마을이 점점 비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 한번씩 고향에 갈 때마다 넉넉함보다는 쓸쓸함을 먼저 느끼는 것도 내가 자랐던 마을이 왠지 텅텅 비어가는 듯한 느낌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여러 채의 집들이 양지바른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지금은 마을 여기저기 드문드문 자리 잡은 양옥집 몇 채와 내부를 다시 수리한 기와집 몇 채가 전부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며 시골 마을의 그림 같은 양옥집을 바라보노라면 이제 시골의 삶도 퍽이나 윤택하고 여유로운 듯 보이지만, 실제 사정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거지요. 전원 한가운데 잘 지은 양옥집들은 애초 그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라 대부분 도시에서 은퇴한 다음 시골이 좋아 그곳에 들어와 집을 짓고 사는 나이 든 사람들입니다. 그나마 이런 분들이라도 있어 고향 마을이 유지되는 느낌입니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도 참으로 쓸쓸하지요. 아무리 작은 학교라도 예전에는 1학년에서 6학년까지 이삼백 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가 전교생이 여남은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분교로, 그러다 끝내 폐교가 되고 마는 현실을 이미 오래전부터 경험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아이가 없고, 아이를 낳을 젊은 사람들이 없습니다. 폐교 운동장은 관리하지 않아 마치 버려둔 화원과도 같고, 더 이상 소출이 없어 묵혀두는 들판과도 같습니다. 

    마을 곳곳의 모습도 그렇습니다. 예전에 울타리를 튼튼하게 엮어 동네 아이들의 출입을 막았던 과수밭들도 대부분 관리를 않은 채 그냥 내버려 두고 있습니다. 과수나무를 관리할 만한 사람들도 죄다 도시로 떠나거나 그곳의 늙은 나무처럼 늙어버렸습니다.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합친 것만 하던 사과와 배가 달리던 과수밭이 어디까지가 산이고, 어디까지가 밭인지 경계조차 허물어지고 말았습니다. 산과 밭둑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 남아 있는 어른들의 삶이 허물어진 것이겠지요.

    사람들이 떠난 마을의 빈집들을 바라볼 때의 마음 역시 그렇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보다 일찍이 도시로 떠나고, 그 자리에 나이든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만 되어도 양호한 편입니다. 이미 십년 전에 빈집이 되어 버린 우리 옆집의 사정을 보면 그렇습니다. 마을에서는 제법 큰 기와집이었고, 그 집의 어른들이 살아있을 때만 해도 시내에 사는 손자들이 시골에 사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가져다 심은 노란 수선화가 봄마다 꽃밭 앞쪽에 줄을 맞춰 피어나던 집이었습니다. 그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연이어 돌아가시자 그때부터 집이 묵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집이 비게 되면 딱딱한 마당에 제일 먼저 날아와 자리를 잡는 게 한해살이풀들이지요. 지난해까지 사람이 밟고 다니던 마당이 금세 바랭이 밭이 되고 여름이면 하얀 들꽃의 개망초 밭이 됩니다. 3년쯤 지나면 저쪽 들판의 쑥대와 같은 여러해살이풀이 힘으로 밀고 들어와 마당과 화단을 점령해버립니다. 집이 빈 지 십 년이 되면 튼튼하던 추녀가 무너지고, 마당의 사정은 더욱 고약스럽게 바뀌어 온 마당이 쑥부쟁이 숲이 되고 관목 숲이 되어버립니다.

    세월을 이기고 시간을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시골의 빈집 마당에서 예전 그 집에서 살던 젊은 시절의 어른들을 생각하는 저 역시 머리가 하얗게 센 초로의 노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마을 어른 한 분이 돌아가실 때마다 집이 하나씩 비어갑니다. 고향에 갈 때마다 그것이 가장 안타깝지요. 그런 고향으로 저는 아직 할 일이 많다고 돌아가지 않으면서 지금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고향이 옛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또 얼마나 이기적인가를 잘 알면서도 모든 것이 풍성했던 저의 소년 시절을 떠올리며 한 번 더 묻습니다. 우리 고향이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