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과제들] 상. 무연고 사망은 ‘사회적 타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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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웰다잉 과제들] 상. 무연고 사망은 ‘사회적 타살’

    무연고 사망자 이쓸쓸씨의 외로운 장례 동행기
    춘천시 무연고 사망자·시신 인수 거부 매년 늘어
    혈연 중심 장례문화 변해야 적적한 장례식 준다
    춘천 공영장례 지원금 80만원에서 100% 올라

    • 입력 2021.12.26 00:02
    • 수정 2022.01.04 11:44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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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라톤의 결승선은 출발선이다. 결승선과 출발선이 맞닿아 있듯 죽음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명제는 ‘죽음 앞에선 누구나 평등하다’고 믿게 하지만 과연 죽음 앞에서 우리는 정말 평등한가? 죽음으로 생(生)을 되돌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쓸쓸씨에게 수의를 입히는 모습. (사진=조아서 기자)
    이쓸쓸씨에게 수의를 입히는 모습. (사진=조아서 기자)

    12월 14일 오전 8시 48분 A장례식장. ‘누군가’의 장례 소식에 찾아간 곳. 큰 건물 앞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을 지나 빈소가 아닌 그 옆 작은 건물로 향했다.

    그곳에서 마주한 이쓸쓸(가명·81)씨는 지난 11월 26일 12시 5분 춘천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로부터 18일이 지나서야 안치 냉장고에서 나와 장례가 치러졌다.

    ▶가족, 있지만 없습니다··· 늘어나는 무연고 사망자

     

    이쓸쓸씨가 사망 후 18일간 머문 안치 냉장고. (사진=조아서 기자)
    이쓸쓸씨가 사망 후 18일간 머문 안치 냉장고. (사진=조아서 기자)

    이씨는 무연고자다. 그가 안치 냉장고에 오래 머문 이유이자 그의 장례가 ‘식’ 없이 치러지는 이유다. 무연고자는 혈통이나 법률 따위로 맺어진 관계나 인연이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올해 춘천에서 치러진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는 이달 23일 기준 18건이다. 2018년 5건, 2019년 13건, 2020년 16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이와 함께 증가하는 수치가 또 있다. 무연고 사망자 중 가족이 있는 비율이다.

    무연고 사망자는 ‘연고자가 없는 무연고’ ‘신원불명’ ‘연고자의 시신 인수 거부’로 구분할 수 있다. 춘천시에 따르면 전체 무연고 사망자 중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한 비율은 2018년 40%(2건), 2019년 61.5%(8건), 2020년 75%(12건), 올해 77.8%(14건)로 꾸준히 늘었다. 2019년부터 무연고 사망자 중 60~70%대가 연고자가 있음에도 시신 인수를 거부한 것이다.

    이들의 장례 진행 과정은 보통 14일에서 한 달 이상 걸린다. 가족관계증명서를 통해 연고자를 찾아내고 시신을 인수할지, 포기할지 응답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연고자가 없는 완전 무연고자는 그보다 장례가 빠르게 진행되기도 한다.

    ▶25년간 함께 살았지만 그저 동거인일 뿐··· 혈연중심 장례문화 변해야

     

    이쓸쓸씨가 잠든 관. (사진=조아서 기자)
    이쓸쓸씨가 잠든 관. (사진=조아서 기자)

    이씨처럼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경우는 시신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김종수 A장례식장 실장은 “집이나 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해 오랜 시간 뒤에 발견된 시신은 부패 정도가 심해 알아보기도 어렵고, 시신을 닦고 수의를 입히는 과정이 몇 배는 힘들다”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만남이 줄고 대면을 꺼리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무연고자가 고독사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20~30분의 염습을 마치고 수의를 입은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그의 동거인 장평화(가명)씨가 찾아왔다. 장씨는 이씨와 25년간 함께 살았지만 법적으로 가족은 아니었다. 장씨는 마지막으로 본 이씨의 맨발이 못내 눈에 밟혔는지 양말을 챙겨와 시신이 안치된 관에 넣었다.

    현행 장사법은 직계가족 말고 친구, 동거인, 동성 연인 등이 고인의 장례식을 치르기 어렵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부터 새로운 ‘장사업무 안내(지침)’에 따라 장례주관자의 범위를 넓혀 혈연으로 맺은 가족이 아니더라도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했다. 서울시에서는 지침에 따라 ‘가족 대신 장례’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홍보가 잘 이뤄지지 않아 실무자 중에서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또 법적 강제성이 없어 다른 시군 단위 지자체까지 확대되지 못하고 현장에선 제대로 실현되지 않는 실정이다.

    ▶장사(葬事)로 장사 안해··· “최소한의 예우 갖출 수 있길”

     

    이쓸쓸씨의 관을 실을 리무진. (사진=조아서 기자)
    이쓸쓸씨의 관을 실을 리무진. (사진=조아서 기자)

    오전 11시 6분 이씨가 잠든 관을 실은 리무진이 춘천안식원으로 향했다. 12시에 시작하는 화장(火葬) 시간에 맞추기 위함이었다.

    그의 장례를 위해 정부가 160만원을 지원했다. ‘춘천시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안’이 통과(본지 10월 7일자 보도)되면서 국가에서 지원하던 80만원에 춘천시의 80만원을 더해 최대 160만원의 지원금을 받게 된 것이다.

    ‘공영장례’는 연고자가 없는 사람이나 재정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가는 방식의 장례가 아니라 장례절차에 따라 공공이 마련한 시간과 공간으로 고인의 존엄한 마무리를 보장하는 제도다.

    지난 10월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공영장례 관련 조례를 설치한 전국 지방자치단체는 245곳 중 56곳(22.9%)에 그쳤다. 이씨의 운구를 맡은 박광재(40) 대한라이프 대표는 “춘천시에서 지원이 는 이후 고인에게 최소한의 예우를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장례식장마다 가격 차이가 있지만 A장례식장의 안치 냉장고 하루 안치료는 7만4000원이다. 이씨의 서류가 정리되는 18일 동안 안치료로만 130여만원이 든 것이다. 수의, 관, 유골함, 차량비, 화장비용 등만 해도 140만~150만원을 훌쩍 넘는다.

    박 대표는 “앰뷸런스 차량으로 관을 옮길 때는 마음이 안 좋아 손해가 나더라도 리무진으로 고인을 모시곤 했다”며 “여전히 풍족하진 않지만 지원비가 80만원일 때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고 말했다.

    ▶안식의 집에 ‘안치’?··· 그저 ‘보관’되는 유골함

     

    이쓸쓸씨가 생전에 받았던 상패들이 관 앞에 놓여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이쓸쓸씨가 생전에 받았던 상패들이 관 앞에 놓여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화장 직전 장씨는 오전부터 들고 다닌 보자기에서 상패를 꺼냈다. 생전 이씨가 받은 상들은 묵념하는 20초 남짓 그의 곁에서 반짝 빛났다.

    1시간가량 화장 절차를 거친 후 이씨의 유골함은 춘천안식원 ‘안식의 집’에 안치됐다.

     

    안식의 집 관계자가 이쓸쓸씨의 유골함을 캐비닛에 안치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안식의 집 관계자가 이쓸쓸씨의 유골함을 캐비닛에 안치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이 안치되는 안식의 집 15호실(왼쪽)과 다른 호실의 비교 모습. (사진=조아서 기자)
    무연고 사망자 유골함이 안치되는 안식의 집 15호실(왼쪽)과 다른 호실의 비교 모습. (사진=조아서 기자)

    안식의 집의 13, 14, 15, 27호실은 무연고자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철제 캐비닛 안에 10개의 유골함이 함께 보관된다. 밖에서 캐비닛 안을 볼 수 없어 안치보다는 보관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공간이다. 춘천도시공사 춘천안식원 관계자는 “현재 13, 14, 27호실은 다 찼으며 유골함 900개를 보관할 수 있는 15호실은 3분의 1 정도 찬 상태”라고 말했다.

    이곳에 안치된 유골함들은 15년간 보관된다. 이후에는 유택동산에 뿌려진다. 가장 최근에는 2017년에 한 차례 산골(뿌려짐)이 행해졌다.

     

    산골이 행해지는 춘천안식원의 유택동산. (사진=조아서 기자)
    산골이 행해지는 춘천안식원의 유택동산. (사진=조아서 기자)

    춘천의 무연고 사망자를 살펴보면 10명 중 7명 이상이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한다. 생전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이씨 역시 ‘무연고자’로 생을 마감했다. 이씨의 외로운 사망은 존엄한 죽음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졌다. 

    전국적으로 매년 발생하는 3000여명의 무연고 사망자는 개인의 죽음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죽음이라고 할 수 있다. 급변하는 사회의 위기를 반영하지 못하는 사회보장제도의 미비와 법 제도의 결손이 빚은 ‘사회적 타살’인 셈이다.

    현장에서 만난 장례사업 관계자들은 “전국적으로 보편적인 수준의 장례가 시행될 수 있도록 지자체, 국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박 대표는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하면서 이익과 손해를 따질 생각은 없다”며 “그저 더 이상은 누군가를 향한 애도가 가로막히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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