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의 딴생각] 자두나무 아래서 관을 고쳐 맨다는 것
  •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하창수의 딴생각] 자두나무 아래서 관을 고쳐 맨다는 것

    • 입력 2021.09.26 00:01
    • 수정 2021.09.27 00:09
    • 기자명 소설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창수 소설가
    하창수 소설가

    옛날, 호랑이 담배 필 적 얘기다. 

    단점이라곤 청렴강직한 것 외엔 없던 한 선비가 쉰이 넘도록 미관말직을 떠돌다 마침내 그마저도 떨려나서 백수로 지내던 어느 날, 뱀눈에 눈초리가 처져 흉측한 젊은이 하나가 나이답잖게 뒷짐을 진 채로 선비의 초가집을 찾았다. 누옥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평소 즐기던 작가의 신작 단편야화집 《월국연대기(月國年代記)》를 뒤적이고 있던 선비는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두루왕(頭漏王)이라고 자신을 밝힌 젊은이에게로 건너가던 선비의 눈길이 문득 가늘어졌다. 두루왕이면 중원을 장악하고 있는 삼태성국(三台星國) 변방 성주들 중 하나인데, “그가 왜···?” 싶었던 것이다. 의심어린 눈초리의 선비에게 젊은이가 긴요한 얘기를 할 게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달라고 말하고는 선비의 대답도 듣지 않고 마당을 나섰다. 궁금증이 일어난 선비는 보고 있던 단편야화집을 손에 든 채로 젊은이의 뒤를 따라나섰겠다.

    한참이나 종종걸음을 치다가 다다른 곳은 마을 초입 오얏나무, 그러니까 자두나무 아래였다. 비밀스런 얘기라도 나눌 듯 보이던 젊은이가 사람들 왕래가 잦은 데를 고른 게 이상했지만, 선비는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며 자신의 손에 들린 《월국연대기》를 살살 흔들며 “이 야화집이 얼마나 재미난지 다음 얘기가 궁금해 미칠 것 같으니, 용건만 간단히,”하고 말했다. 그러자 두루왕이란 자가 뒷짐을 지고 있던 손을 쑥 내밀었는데, 그 손에 갓이 하나 들려 있었다. “웬 갓?” 하던 선비는 그제야 바삐 나오느라 맨상투 채로라는 걸 깨달았다. 예의 흐흐 웃으며 선비는 두루왕이란 자가 내민 갓을 덥석 잡고는 서둘러 끈을 매었다. 아뿔싸! 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하고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하라 했거늘. 얘긴즉, 오이밭에선 신발이 벗겨져도 몸을 굽혀 신발을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선 갓끈이 풀려도 고쳐 쓰지 말라던 악부(樂府)의 군자행(君子行)을 깜빡한 순간이었다.

    이후의 이야기는 몇 갈래로 갈린다. 평소 삼태성국의 전횡과 부패상을 민중들에게 알리는 데 게으르지 않던 선비, 그리고 선비가 속한 정의파당(正義波黨)을 제거하기 위해 삼태성국 황제가 두루왕을 이용했다는 설이 그 하나. 호시탐탐 중앙 진출을 노리던 변방의 두루왕이 신흥세력으로 삼태성국을 위협하고 있던 문왕(文王)의 휘하에 자신의 책사 도모(都某)를 천거하기 위해 문왕과 절친한 선비에게 접근해 덫을 놓았다는 설이 다른 하나. 하나가 더 있는데, 덫을 놓으려 했으나 선비가 걸려들지 않자 선비가 속한 당파를 음해하는 공작을 벌이다 애꿎은 선비의 삶을 망쳐놓았다는 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 온갖 설들의 귀결은 하나로 모아졌으니, 문자 그대로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는, 천야곡지야읍(天也哭地也泣)의 지경이라!

    자장(子長)은 채택(蔡澤)을 얘기하며 중천에 뜬 해와 만월을 얘기하며 그 저묾을 얘기했고, 초목자(草木子)는 자고로 귀한 자는 천한 자들의 시기와 원한을 피해갈 수 없음을 설파했으며, 『시경(詩經)』은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처지를 턱밑에 늘어진 살을 밟아 나아갈 수 없고 자신의 꼬리를 밟아 물러날 수 없는 늑대에 비유했으나, 그동안 이 선비가 꼿꼿하게 지켜왔던 맺고 끊음이 칼로 자르듯이 분명한 삶법과 인생사를 지금에 와 되돌아보면, 저 영격란(英格蘭), 그러니까 영국이란 나라가 인도라는 거대한 황금덩어리와도 같은 대륙과도 바꾸지 않을 거라고 호언한 대문호 사사비아(莎士比亞), 그 나라말로 셰익스피어라 불리는 작가의 언설로 대변할 수 있으니, “Cowards die many times before their deaths; the valiant never taste of death but once(비겁한 자는 죽음을 맞기 전에 수없이 죽고, 용감한 자는 오직 단 한 번만 죽을 뿐).”

    갑자기 왜 호랑이 담배 필 적 얘기를 늘어놓고, 지금은 어지간한 작가들조차 쓰려들지 않는 구닥다리 문체를 쓰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련다. 오이밭을 지나다 신발끈이 풀어졌는데도 고쳐 매지 않다가 자빠지면 그것 또한 창피한 일이요, 오얏나무 아래를 지나다 풀어진 갓끈을 고쳐 매지 않았다가 험담 좋아하는 자의 눈에라도 띈다면 그것 또한 창피를 면치 못할 일이니, 진실한 자도 진실한 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진실치 못한 자가 도리어 진실한 자로 추앙받는 것이 세상이라면, 이 모질도록 ‘엿’같은 일들로 차고 넘쳐 괜히 한번 옛투를 빌어 찌질찬란한 속내를 드러내봤을 뿐, 그리 중뿔난 이유가 있겠는가, 하고 대답하련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