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제주도는 ‘한 달 살기’, ‘유명 연예인의 별장’ 같은 키워드와 함께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과거 제주는 신혼여행이나 수학여행으로 가는 특별한 여행지였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다녀올 수 있는 일상적인 여행공간이 되었습니다. 제주는 섬 자체가 거대한 화산이라는 지리적 특성 덕에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을 모두 석권한 유네스코 3관왕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하지만 제주가 특별한 이유는 단지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만은 아닙니다.

고등학교 지리교사인 저는 학생들과의 수학여행이나 개인적인 답사를 위해 자주 제주를 방문했습니다. 평소 답사 때는 제주의 독특한 화산 지형이나 생태환경과 같은 자연경관에 주로 관심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겨울에서는 제주의 인문적 측면에 집중해 보기로 했습니다.

2025년 1월 초, 전국적으로 눈이 많이 내려서 제주로 향하는 많은 비행기가 결항하였습니다. 물론 제주에서 육지로 나오는 비행기도 역시 운항을 멈추었죠. 저는 다행히도 시간대를 잘 맞춰서 예정된 비행기를 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내가 제주에 살고 있는데 육지에서 중요한 약속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없겠구나 라구요. 섬에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제주에 살고 계신 분들을 만나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현지인답게 제주를 익숙하면서도 흥미롭게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제주의 독특한 해녀 문화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예로부터 척박한 제주 땅에선 농사가 어렵고 살림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주로 밭일과 집안일을 맡고, 여자는 바다로 나가 물질을 했습니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제주의 철저한 능력주의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합니다. 해녀들은 숨을 참을 수 있는 시간과 깊은 바다까지 잠수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구분된다고 하는데, 놀랍게도 만약 20대 젊은 해녀가 능력이 더 뛰어나다면 아무리 경험이 많은 할머니보다도 상군으로서 대우받는다고 합니다.

철저히 현실주의와 효율성을 반영한 제주의 가옥 문화 ‘안거리(안채)-밖거리(바깥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주 가옥은 하나의 마당 안에 두 채의 집이 있는데, 안거리는 큰 집, 밖거리는 작은 집입니다. 두 집은 식사 준비 공간인 고팡을 따로 두어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가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합니다. 자식이 결혼하면 부모가 자연스럽게 밖거리로 물러나고 젊은 세대가 안거리를 차지합니다. 이는 젊은 며느리가 경제 활동의 주축인 물질을 하러 바다에 나가야 하는 제주 특유의 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효를 중시하는 과거 유교 문화와는 사뭇 다르게 보이지만, 오히려 요즘 시대의 가족 문화와는 더 잘 어울리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제주 원도심을 걷다 보니 제주 4·3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북초등학교와 광장, 주정 공장, 청계천의 모티브가 된 인공 하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곳들은 단지 역사적인 공간이 아니라 제주의 문화와 삶이 녹아든 특별한 장소였습니다. 어찌 보면 제주의 특별함은 척박한 환경과 아픈 역사 속에서도 기필코 살아남아야만 했던 제주인들의 삶의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이름처럼 특별한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을 넘어선 제주인들의 강인한 삶과 독특한 문화 속에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