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시의 거리두기에⋯여성의병장 ‘윤희순’이 사라진다

[3·1절 제105주년 기획] 춘천시, 윤희순 의사 유적지 관리 소홀 고택 썩고 의적비 기우는 등 상태 심각 경기, 충북 등 타지역 선양사업은 활발 이미 주도권 잃어, 역할 고민 필요한 때

2024-02-29     한승미 기자

빼앗긴 국권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순국선열이 희생한 3·1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105주년이 된다. 독립을 위해 투신한 선조들의 열정은 남녀노소의 구분이 없었다. 그중 윤희순 의사는 한말 여성 의병단 단장으로 탄약 제조소를 운영하는 등 의병 선봉에 선 대표적 인물이다. 인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고애신의 실제 모델로도 알려졌지만 정작 그가 활약한 무대가 춘천이었는지 아는 이들은 드물다. 춘천시는 윤 의사 선양 사업을 추진할 명분이 없다며 방관한다. 전문가들은 “윤희순이란 인물을 눈 뜨고 다른 지자체에 뺏길 위기”라고 경고한다. <편집자 주> 

 

윤희순 의사의 의적비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수년째 개선되지 않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윤희순 의사 유적지가 있는 춘천 남면 가정리의 한 마을. 26일 그곳에서 마주한 것은 ‘피사의 사탑’ 마냥 기울어진 기념비였다. 윤 의사의 공적을 기리는 ‘해주 윤 씨 의적비’인데 2~3도가량 기울어진 모습이었다. 위태로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있는 윤 의사 생가 고택의 흙벽은 떨어지고 목재는 썩은 상태였다. 의병의 승전을 기원했던 우물터와 인근의 무기 제조소, 묘역도 관리가 되지 않았다.

“나라를 구하는데 남녀 구별이 있을 수 없다.” 최초의 여성 의병장인 윤희순 의사는 이렇게 외치며 일제에 항거했다. 윤 의사는 16살이 되던 해 유제원과 혼인하면서 춘천으로 왔다. 윤 의사는 여성 의병을 모아 ‘안사람 의병단’을 조직하고 무기와 탄환을 만들었다. 또 “왜놈 대장 보거라”라며 일본 대장에게 실명을 밝힌 격문을 보내고 12편의 의병가와 경고문을 제작해 의병 활동을 독려했다.

윤 의사가 활약한 주무대는 춘천이었다. 그가 ‘안사람 의병가’와 무기를 만드는 등 활약했던 곳이 춘천인 것은 물론이고 그의 고택과 묘가 여전히 춘천에 있기 때문이다. 해주 윤씨 의적비 역시 윤 의사의 손자인 고 류연익 광복회 도지부장이 의병 관련 문헌을 강원대에 기증한 것을 계기로 윤 의사 집터에 건립됐다. 김금분 기념사업회 이사는 “윤희순 의사 뿌리는 당연히 춘천이고 기념사업회는 오랜 역사와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윤희순 의사의 초상. (사진=한국문화원연합회)

하지만 춘천시에서는 윤 의사의 흔적을 찾기조차 어렵다. 기념비와 생가터 의적비는 관리가 전혀 되지 않을뿐더러 일반인들은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한다. 춘천에서는 올해 3·1절에도 윤 의사의 공식 추모제가 열리지 않는다. 추모제를 맡았던 윤희순기념사업회가 이사장 교체와 별세, 사임 등 내부 문제로 운영 파행을 겪으며 몇 해째 이런 상태다.

포털 사이트에 ‘윤희순’ 세 글자를 검색하면 먼저 뜨는 지역명은 춘천이 아닌 구리와 충주다. 

춘천시는 오히려 윤 의사와 거리 두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춘천시는 남면에 있는 윤 의사 고택을 ‘생가’라 부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현재 마당이 있던 위치에 고택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아직은 고택 터라고 봐야 한다는 것. 심지어 실제 살았는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고택 일부에 거주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전문가들이 연구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생가’는 사전적 의미인 ‘태어난 집’이 불명확한 경우 살았던 집으로 지정할 수도 있다. ‘껍데기는 가라’로 유명한 신동엽 시인의 부여군 생가 역시 그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성장하고 신혼생활을 했던 ‘살았던 집’이다. 

허준구 전 춘천학연구소장은 “이미 충분한 자료와 연구가 있는데 생가와 유적지를 살릴 방안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실제 살았던 곳인지 검증이 안 됐다며 방과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며 “주인이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춘천의 윤희순 선양사업이 표류하는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에 대해 시는 2022년 이후 학술대회를 통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고택 고증 등을 진행하고자 했으나 이를 수행할 단체 문제 등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독립운동가 윤희순 유적지 안내도. (사진=한승미 기자)

그러는 사이 다른 지자체에서는 ‘윤희순 모시기’에 혈안이다. 윤 의사는 ‘여성’ ‘최초’ ‘의병’ 등 다양한 상징성을 가진 독립운동가인 만큼 국위 선양을 위한 상징적 의미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서울과 경기는 윤 의사 출생지를 놓고 경쟁했고 충북은 그의 본적을 내세웠다. 충청북도는 2020년 충주에 윤 의사 흉상을 설치하고 온라인에서 그를 ‘충북의 독립운동가’로 소개했고 그의 본적을 중심으로 걷기 프로그램도 열었다. 구리는 ‘윤희순 역사 찾기’에 시력을 집중, 그의 출생지가 구리시 수택동 검배마을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국가보훈처 ‘보훈 문화상’을 수상했다. 포털사이트에서 ‘윤희순’을 검색하면 ‘구리’와 ‘충주’ 지역명이 나온다.

 

윤희순 의사 고택의 흙벽이 떨어지고 나무가 썩어가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시의 무관심한 태도에 유적지 상태는 점점 악화하고 있다. 광복회 강원도지부는 2021년부터 매년 유적지 실태를 점검, 시에 정비를 요청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들 단체는 매년 도내 학생을 대상으로 ‘윤희순 의병 리더십 현장 체험’을 진행하고 있는데 유적지를 둘러본 아이들은 “고택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 “윤희순 의병장 기념관은 왜 없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광복회 도지부 관계자는 “학생들이 류인석기념관과 비교하며 ‘윤 의사가 여자라 차별하는 거냐’고 하는데 견학 때마다 민망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춘천시는 윤희순 관련 사업을 추진할 명분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윤 의사가 알려진 고택 터에서 실제 거주했는지 고증이 되지 않았다는 것. 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의적비와 주변 정비는 어떻게 풀어갈지 검토하고 있지만 사유지라 임의 진행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의병의 훈련과 무기 제조에 사용됐던 훈련소에는 유적기념비. 역사적인 장소이지만 주로 농지로 활용되고 있다. (사진=한승미 기자)

전문가들은 춘천시가 윤 의사 서훈 상향을 시작으로 선양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윤 의사의 독립유공자 훈격은 5등급(애족장)으로 정부 독립유공 포상등급 중 최하 등급이다. 해외에서의 독립운동 등 구국 활동이 공적에 반영되지 않아 서훈등급 재심의 여론이 일었다. 시는 2019년 기념사업회와 협력해 정부에 서훈 상향을 요청한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김지숙 춘천시의원은 “윤 의사는 인력 양성과 무기 제작,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항일운동을 펼쳤기 때문에 서훈이 유관순 열사보다 높은 1급까지 가야 하는 것으로 안다”며 “서훈 상향 운동을 비롯해 시 차원의 유적지 관리와 선양단체 재정비 등 과제가 산적하다”고 말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