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때문에 월패드 고장⋯‘알아서 고치라’는 한전
우미린 뉴시티아파트 정전 후 179세대 월패드 고장 한전 “직접적으로 책임있는 사유가 아니므로 면책사항” 입주민들 “소비자 과실 없는데 자부담 수리 억울”
지난 4일 춘천 후평동 일대 한국전력이 관리하는 설비 이상 탓으로 추정되는 정전이 발생하면서 한 아파트 통합 주택 제어판(월패드)가 일제히 고장났다. 한전 측이 월패드 고장에 책임이 없다며 수리비용 지불을 거부하면서 입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춘천 후평동의 우미린 뉴시티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한국전력공사 강원본부에 따르면 지난 4일 오후 7시 57분쯤 후평동, 효자동, 옥천동 일대에서 지상 개폐기 고장으로 추정되는 정전이 발생해 1시간 20여분 만에 복구됐다. 그런데 정전 후 우미린 뉴시티 아파트 전체의 10%에 해당하는 179세대의 월패드가 고장 났다. 입주민들은 14일 현재까지 도어폰은 물론 방범 감지, 조명·난방 제어 기능 등 월패드 기능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정전이 발생한 원인은 한전에서 관리하는 지중개폐기(전력설비 분배 및 전원 개폐 기능) 내부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한전 측에 피해보상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으나 한전은 ‘직접적인 책임이 아닌 사유로 전기공급이 중단된 경우 손해배상 면책이 적용된다’는 전기공급약관을 들어 배상이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전 강원본부 관계자는 “공사 중이었거나 관리 소홀로 고장 난 경우가 아니어서 면책사항에 해당한다”며 “후평동 일대가 정전됐는데 우미린 아파트의 월패드만 고장 났기 때문에 제품 결함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관리사무소 측은 월패드 허가 인증기관에도 문의했지만 안전 및 전자파 인증만 통과하면 성능과 관계없이 제조·판매 가능하며, 품질 보증기간이 지나면 제조사에서 보상할 의무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전기위험 담보 특약이 포함된 아파트 화재보험을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했으나 월패드가 개인적으로 소유권을 갖는 ‘전유부분’에 해당해 보험 청구가 어려운 상황이다. 월패드 수리비는 1세대당 최대 23만원으로 179세대로 계산했을 때 4100만원이 넘는다.
관리사무소는 하는 수 없이 월패드를 자부담으로 수리해야 한다고 안내했지만 입주민들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입주민 정모씨는 “소비자 과실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정전으로 월패드가 고장 났는데 한전은 손해배상을 못해주겠다고 한다”며 “한전이 관리하는 설비 이상으로 정전이 발생했으니 당연히 이를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앞으로도 충분히 정전이 일어날 수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피해를 봐야 하냐” “내 잘못이 하나도 없는데 왜 자부담인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우미린 뉴시티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이번 문제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며 “입주민들이 월패드를 사용해야 하니 자부담으로 고치고 추후 한전에 손해배상 받는 방법을 찾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전이 월패드 고장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할 수는 없을 거란 전망이다. 법률사무소 강일 박제중 변호사는 “한전이 관리하는 설비에서 고장이 났는데 한전 측이 면책사유를 들면서 책임이 없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정확한 원인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정전이 유일한 원인이었는지, 아파트 배선 설비나 월패드 자체의 하자도 이에 영향을 미쳤는지에 따라 한전의 책임 범위가 달라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당사자 간에 원활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법적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현지 기자 hy0907_@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