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간 ‘수포자’ 기사를 쓰면서 학창 시절을 돌아보게 됐다. ‘획일적인 학습보다는 고유의 재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또는 ‘공부보단 돈이 더 가치 있다’ 등 현장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에서, 성적이라는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학생들의 학습 기회와 공교육을 통한 올바른 가치관 형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보도라고 결론지었다.
인생에서 공부가 좋았던 시기는 중학교 2~3학년 때였다. 입시는 아직 먼 이야기였고, 순전히 재밌어서 교과서를 들여다봤다. 학습한 이론으로 새로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도 짜릿했다. 정제된 언어로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고, 넓어진 시야로 다시 사회를 보는 연습이 이뤄졌다.
이 시기 쌓아둔 지적 호기심은 대학 입시로, 치열한 전공 공부로, 평생을 공부해야 하는 기자라는 직업으로, 대학원 진학으로 이어졌다. 학교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현재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학창 시절 가장 큰 과업인 ‘공부’를 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면 성과를 얻을 수 있고,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면 그에 맞는 보상이 따른다는 이치도 깨달았다. 학생일 때 경험한 반복된 성취는 자존감 형성과 건강한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끼친다. 예비 배우자를 제대로 알기 위해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열람할 필요가 있다는 한 커뮤니티의 조언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공교육은 학생들이 사회의 공통 규범과 상식을 학습하게 하고, 민주시민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부는 단순히 대학을 잘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인이 된 이후 더 윤택한 삶을 위해 필요하다.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내면의 단단함과 올바른 가치관을 갖추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 학교 공부다.
밥 먹고 살아가는데 정말로 ‘국영수’가 필요 없을까. 학교 현장에서 만난 국어 교사들은 하나같이 교과서와 문제집 지문에서 많은 배경 지식을 얻었다고 했다. 문장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지식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학창 시절 쌓은 영어 실력 없이는 취업 준비를 위해 필요한 외국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도 없다. 영어로 저장된 인류의 지식이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영어에 능통하면 더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에서 도전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수학도 마찬가지다. ‘186명 중 성적 60점 미만인 학생은 79명’의 데이터를 보고, ‘E등급이 10명 중 4.25명’이라는 문장으로 치환하기 위해선, 비례식과 함수에 대한 개념이 있어야 한다. 경제학의 기본인 수요공급곡선이나 환율 변동을 이해할 때도, 엑셀의 각종 수식을 사용할 때도 요구되는 능력이다.
모든 학생이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다.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 학습 과정에서 만난 지식의 한 조각이 인생을 좌우할 경험을 만들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고1 문학 시간에 만난 시인 백석(白石)의 문장은 마음의 위안을 주는 평생 친구가 됐다. 중2 지리 수업에서 배운, 바다와 같이 넓은 오대호는 미국까지 배낭여행을 떠날 용기를 줬다. 새싹들이 단단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도록, 공부의 즐거움과 성취를 경험할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