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돔 먹고, 흑돼지 먹고 관광지로” 춘천 주민자치회, 제주 ‘부실 견학’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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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돔 먹고, 흑돼지 먹고 관광지로” 춘천 주민자치회, 제주 ‘부실 견학’ 논란

    춘천시주민자치협의회, 부실 견학 논란
    2박 3일 선진지 견학 대부분 관광지
    주민센터 방문했다가 사진만 찍고 돌아와
    협의회 ″현지에서 변동 발생. 자체 교육으로 대체″

    • 입력 2023.12.28 00:09
    • 수정 2024.01.05 10:49
    • 기자명 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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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진지 견학을 목적으로 제주도에 간 춘천시 주민자치위원들이 일정 대부분을 관광지에서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모범 자치위원회 견학을 위해서였다지만, 현지 주민센터를 찾아가 건물 앞에서 사진만 찍고 돌아온 정황도 포착됐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춘천시주민자치협의회’ 소속 주민자치위원 50명은 지난 10월 29일부터 3일간 선진지 견학을 위해 제주도를 방문했다.

    이 견학에는 ‘행사실비지원금’ 명목으로 시 예산 2000만원이 들어갔다. 행사실비지원금은 선진지 견학 등 주민 활동에 필요한 경비나 숙식비 등을 위해 제공되는 돈으로 시민 혈세에서 나온다. 주민자치위원들이 자부담한 돈은 1000만원으로 이를 포함해 총 3000만원이 경비로 사용됐다.

    주민자치협의회는 당시 “제주도 내 모범 자치위원회를 방문해 문화적이고 친환경적인 주민자치회가 될 수 있는 적용 방안을 발굴하겠다”고 견학 목적을 설명했다.

    하지만, 견학은 대부분 관광지에서 진행됐다. 이들은 3일에 걸쳐 제주곳자왈환상숲, 무지개해안도로, 산방산, 에코랜드테마파크 등을 방문했다. 모두 현지에서 손꼽히는 관광 명소들이다. 귤이나 기념품 등을 파는 농수산물직매장을 방문해 쇼핑을 즐기기도 했다. 주민자치회는 위원들에게 배포한 견학 일정표에 방문지를 ‘핫플레이스’나 ‘볼거리 가득한’ 곳이라며 소개했다. 애초에 선진지 견학보다는 관광을 주목적으로 삼은 셈이다.

     

    지난 10월 30일 제주도 선진지 견학 당시 주민센터에 방문한 춘천시주민자치협의회. (사진=춘천시)
    지난 10월 30일 제주도 선진지 견학 당시 주민센터에 방문한 춘천시주민자치협의회. (사진=춘천시)

     

    견학 중간중간 들른 식당도 현지 특산물을 파는 ‘맛집’ 위주였다. 이들이 방문기간 먹은 음식은 고등어, 회 정식, 해물 전골, 옥돔구이, 전복, 흑돼지구이, 토종 돼지 주물럭 등으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지는 않은 메뉴들이다.

    반면, 당초 목적이던 현지 주민센터(주민자치회) 방문은 3일간 고작 두 번에 그쳤다. 방문 시간도 각각 한 시간 남짓으로, 센터에 잠시 들른 위원들은 곧장 다시 관광지로 향했다.

    일부 주민자치위원은 센터 견학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했다. 심지어 현지 주민센터와 사전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는데 한 자치위원은 “(주민센터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건물 앞에서 현수막을 든 채 사진만 찍고 돌아왔다”며 “두 곳 모두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고 말했다.

    실제 주민자치협의회가 방문했던 제주시 A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앞에서 사진만 찍고 가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주민자치회가 견학을 오면 보통 센터 내에서 교육하거나 직원이 현장을 돌며 설명해주는 방식으로 안내하지만 이와 관련한 요청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튿날 진행된 B동 주민센터 방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주민자치 견학을 위해 센터에 방문했으나 담당자가 출장으로 자리를 비워 얼굴도 못 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현지 기관과 소통이 부족한 데다 견학 준비도 부실해 헛걸음만 한 셈이다. 주민센터 측은 “견학 문의가 왔을 땐 이미 주민자치 담당자 출장이 결정된 다음”이라고 했다.

     

    지난 10월 진행된 춘천시주민자치협의회의 선진지 견학 계획표. (사진=독자 제공)
    지난 10월 진행된 춘천시주민자치협의회의 선진지 견학 계획표. (사진=독자 제공)

     

    선진 자치 사례에 대한 설명이나 교육을 기대하고 견학을 떠났던 주민자치위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 나왔다. 또 다른 주민자치위원은 “견학이 모두 무산됐는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며 “돌아온 후 다른 주민들에게 선진지 사례를 소개하기는커녕 말도 꺼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주민자치협의회는 “여행사를 통해 일정을 잡다 보니 협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며 “형식적으로 사진만 찍고 돌아오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일정을 꼼꼼히 챙기지 못한 부분은 실수”라고 인정하며, “이후 현지에서 제공한 소식지 등을 이용해 자체 교육으로 대체했고, 우수 사례 적용 방안에 대한 위원 간 논의도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번 견학이 애초 목적에 맞지 않게 진행됐다고 판단되면 지원금이 환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춘천시 감사담당관실에 따르면 행사실비지원금이 본래 목적대로 사용되지 않을 경우 전액 환수 조치된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센터 방문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은 있었지만, 그 외 여러 견학이 이뤄진 만큼 지원금을 회수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 중”이라며 “시 차원에서 주민자치회가 현장과 조율하는 과정을 더 챙겼어야 했다. 이 점 숙지해 내년에는 공문 등 사전 협조를 철저히 구해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주민자치협의회는 춘천시 읍면동 지역 주민자치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들로 구성된 협의체로, 지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안에 대한 심의와 의결, 집행 권한을 갖고 주민 대표로 활동한다. 주민자치위윈은 해당 지역에서 거주하거나 사업에 종사하는 이들 중 선정된다.

    [최민준 기자 chmj0317@mstoday.co.kr]

    [확인=김성권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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