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일상] ‘기생충’과 ‘짜파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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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와 일상] ‘기생충’과 ‘짜파구리’

    • 입력 2020.01.15 09:23
    • 수정 2020.04.30 07:30
    • 기자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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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이황석 문화평론가·한림대 교수(영화영상학)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기생충'이 이후 세계 유수영화제에서 수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5일에는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수상소감으로 봉준호 감독이 전한 말은 '1인치의 미학'이었다. 감독은 짐짓 필름아래쪽에 깔리는 영어자막이 잘 번역됐다는 점을 빗대어 말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영어 번역에 대해선 자주 언급됐던 차에 궁금증이 생겼다. 영화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짜파구리'는 어떻게 번역됐을까?

    짜파구리는 영화에 등장하는 '새로운 조합'의 라면이다. 기성제품인 짜장라면 '짜파게티'와 우동라면 '너구리'를 섞어 끊인 레시피가 짜파구리다. 짜파구리는 영화에서 선보이기에 앞서 군대간식인 '뽀글이' 기원설과 TV먹방에서 레시피가 최초로 소개되었다는 설이 있다. 무엇이 오리진인지 가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영어번역은 람동(ram-don:라면+우동)으로 돼 있는데, 브랜드네임의 콤비네이션보다는 면류의 조합으로 작명됐다. 아무래도 짜장면보다는 라면과 우동이 미국사회에 더 많이 알려진 모양이다. 

    사실 영화에서 짜파구리라는 소재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독특한 가루소스로 짜장라면 시장에서 패권을 장악한 짜파게티에 통통하고 쫄깃한 면을 광고포인트로 삼는 너구리우동라면을 섞어 만들었다. 거기에 스테이크용 체크등심을 넣어 고급스럽게 만든 라면이다. 여기에는 일종의 '과잉과 잉여'의 모티브가 녹아있다. 서민음식인 라면이 과잉된 레시피로 고급스런 요리로 둔갑한다. 그리고 그 '고퀄라면'을 상류층 가족이 먹는다. 

    영화에서는 한 그릇만 끓이는데, 극중 사모님으로 등장하는 조여정은 가정부(극중 주인공 송강호의 부인 역 장혜진 출연)에게 막내아들을 달래기 위해 짜파구리를 만들게 한다. 정작 아들이 투정을 부리며 먹지 않자 남편에게 먹으라고 권했다가 거절당하고 자신이 먹는다. 뒤늦게 고등학생 딸이 방에서 나와 자신에겐 먹으라고 권하지도 않았다고 불평을 한다. 최상류층 가정에서도 스테이크 살을 넣어 끓인 짜파구리의 임자는 우선순위가 있어 보인다.  

    두 개를 섞어 끓였기 때문에 혼자 먹기엔 많다. 그러나 영화에선 누구와 나눠먹지 않는다. 한 사람이 라면을 독점한다. 이러한 과잉은 반드시 잉여가 발생한다. 극중에서 사모님은 남편이 안 먹겠다고 하자 가정부에게 먹겠냐고 한번 권하기도 하는데, 이 때 가정부의 표정은 급화색이 돈다. 그렇게 감독은 잉여의 떡고물을 바라는 하위계층의 심리를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모님은 젓가락으로 한껏 짜파구리를  돌돌 말아 혼자서 독식한다. 

    바로 이 장면과 곧바로 이어지는 화면은 지하실에 가둔 전(前) 가정부 부부를 송강호가 끈으로 둘둘 말아 묶는 장면과 이미지 매칭 된다. 이와 같은 신(scene)과 신의 연결이 의미하는 상징은 잉여의 생산물을 독차지한 자본권력의 하부에서 행여 발생할 수 있는 그 잉여의 떡고물을 얻기 위해 어떤 누군가는 어떤 누군가를 억압해야만 하는 상황을 묘사했다고 해석되어질 수 있다. 리얼리티가 엿보이는 지점이다.

    이와 유사한 상징은 사실 영화 전반에 넓게 포진해 디테일에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장대비가 내릴 때 전망 좋은 박사장의 집에선 막내아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일종의 의례가 치러진다. 이때 이들에게 억수같이 내리는 비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안락한 거실의 소파에서 부부가 섹스를 즐기며 보는 로맨틱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주인집을 탈출한 기택(송강호 분)의 가족들의 동선을 쫓아가다보면 강하다싶던 빗줄기는 홍수로 변해있다. 그리고 음산하게 차오르는 물은 저지대에 위치한 서민들의 목숨을 위협한다. 전기감전이 위태롭게 느껴지고, 스멀스멀 목까지 차오른 오수로 숨이 막혀 헐떡이게도 한다. 하수도보다 아래 위치해 역류하는 변기 위에 올라앉아 막아보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소위 말하는 낙수효과가 뒤틀어지는 순간이다. 흔히 자유주의 경쟁을 옹호하는 측은 정부가 투자자라고 불리는 부자들에게 우호적인 자본친화적인 정책을 펼쳐야 그 떡고물이 아래로 흘러 하위계층에게 널리 이롭게 작동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실체는 낙수로 갈증을 채우기보다는 똥물이 넘쳐흐르고 서로가 그 잉여를 차지하기 위해 으르렁거리는 구렁텅이의 삶이 밑바닥에 펼쳐져 있음을 영화는 고발한다. 

    현재 영화 '기생충'이 미국사회에 흥행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방비만 한해 1000조 규모의 예산을 쓴다 해서 '천조국'이란 별명이 붙은 미국사회 역시 신자유주의경쟁체제에서 이미 극심한 빈부차로 양극화된 지 오래다. 지금으로부터 십년 전, 이를 극복해 보고자 뉴욕의 월가에서 벌여졌던 약탈적 금융자본을 반대하던 대규모 시위의 흔적이 희미해 보이는 듯 했는데, 그들 마음속에서도 불씨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아마도 우리네처럼 그들에게도 분명 영화 기생충은 리얼리티로 다가왔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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