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여행기] 평범한 하루가 여행이 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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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낭만여행기] 평범한 하루가 여행이 될 수 있다면

    일본 도쿄 신주쿠구 이이다바시 역

    • 입력 2023.05.19 00:00
    • 수정 2023.05.19 17:54
    • 기자명 강이석 춘천여고 지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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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이석 춘천여고 지리교사
    강이석 춘천여고 지리교사

    고등학교 시절 일본은 저에게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노벨 문학상 작가 가와타바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을 좋아해서 꿈의 여행지가 니가카이기도 했고, 산길에서 레이싱을 펼치는 애니메이션 이니셜 D의 배경 군마현을 꼭 가고 싶다고 했죠. 오죽하면 당시 가장 좋아하던 가수가 일본 록 밴드 Spitz였고, 행복의 3요소를 'Spitz+샤워+바람'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으니까요. 아무튼, 저도 이런 일본 마니아였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던 제가 회사에 취업하고 첫 워크숍으로 일본 도쿄를 가게 되었습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해서 도쿄 시내까지 달리는 기차 안에서 수백 번도 넘게 들은 가장 사랑하는 Spitz의 Robinson을 들었습니다.

    공식적인 워크숍 일정이 끝난 후 유럽 여행 중 만난 누나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도쿄 대학교에서 유학하며 틈틈이 일본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각자의 근황을 털어놓은 후, 수년 전 함께 했던 유럽 여행의 추억을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나와 그녀는 지금 도쿄 시부야의 허름한 라멘집에 앉아있었지만, 이야기는 마치 우리를 순간 이동하듯이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 베네치아의 골목, 로마의 잔디밭으로 안내했습니다. 여행은 이처럼 사골처럼 우려내고 또 우려내도 점점 진하고 맛있게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여행의 마지막 날은 온전히 혼자 보내는 자유시간이었어요. 아침 일찍 숙소를 나와 근처 카페로 갔습니다. 카페에 앉아서 여행을 정리하며 글을 쓰고 있는 순간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분명히 여기 도쿄 이이다바시 역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며 여행하고 있는데, 제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일본 사람은, 그리고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출근하는 수많은 사람은 분명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여행이 아닌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분명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데 누구는 여행하고 다른 누구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도쿄의 평범한 퇴근 일상과 노을. (사진=강이석)
    도쿄의 평범한 퇴근 일상과 노을. (사진=강이석)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하루 똑같이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그 하루를 여행처럼 살 수는 없지 않을까. 매일매일을 여행처럼 산다면, 평범하게 일어나는 아침을 여행자의 마음가짐으로 한다면 다가올 하루가 잔뜩 기대되어서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네요. 그래서 매일매일 신나게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하루라는 여행을 준비하지 않을까요.

    사실 같은 장소여도 그 장소를 받아들이는 느낌, 그리고 추억은 각자 다르게 적힙니다. 정동진은 누군가에게는 가족들과 새해 일출을 보러 갔던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연인과의 첫 키스의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쓰디쓴 이별의 장소일 수도 있으니까요. 평범한 일상의 장소, 학교 앞에 있는 벤치, 너무나도 익숙한 동네도 누군가에게는 아기자기한 추억이 있는 장소일 수 있는 것이죠.

    결국, 장소를 바라보는 마음가짐(attitude)이 그 장소를 의미 있게 만든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매일의 일상도 그저 그런 하루가 될 수도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냐에 따라서 의미 있고 설레는 여행의 한순간이 될 수 있으니까요. 저와 여러분의 내일 아침도 두근거리면서 하루를 계획하는 설레는 여행의 아침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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