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선의 예감] 행복하게 살 권리, 그 역설적 현실?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용호선의 예감] 행복하게 살 권리, 그 역설적 현실?

    • 입력 2023.03.22 00:00
    • 수정 2023.03.22 12:54
    • 기자명 엠에스투데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청마(靑馬) 유치환의 시 ‘행복’이다. 스무 살 연하의 과부 여선생에 대한 애틋한 감정이 모티브다. 진전되지 못한 사랑, 그럼에도 시인은 만족감을 내보이며 감사해한다. 자조적인 플라토닉러브(Platonic love)다. 현실적, 세간의 인식적 한계를 넘어서 못했음에도 긍정적인 마인드(Mind)로 고백한다. 자신이 사랑한 대상이었다는 사실에 고마워한 지순함의 심경이다. 진정한, 순수한 사랑이라고 자위하지만 요즘 세태로는 수긍만 하기도 쉽지 않다. 자신이 사랑한 그 자체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니까 말이다. 기독교 성경의 “범사에 감사하라”, 불가(佛家)의 가르침인 ‘오유지족(吾唯知足·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자신에 대해 만족하라)’에 입각한 심사다. 

    춘분(3월 21일)을 넘어섰으니 완연한 봄이다. ‘이제는 살 것 같다’는 말이 도처에 횡행한다. 긴 겨울이 고되고 매우 곤란했다는 방증이다. 때마침 뉴스는 그 전날(3월 20일)이 ‘국제 행복의 날’이었음을 알렸다. 국제연합(UN)이 정한 날, 반기문 사무총장 체제였던 2012년 제이미 일리엔, 루이스 갈라르도 등 ‘행복중심주의(Happytalism)’ 주창자들의 제안을 수렴해 정한 기념일이라는 설명이다. 주목하게 한 것은 우리 국민은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점이다. 이날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NSD)가 공개한 ‘2023년 세계행복보고서(WHR)’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951점이다. 국민이 스스로 삶의 전체적 질을 평가해 매긴 행복 점수다. 조사대상 137개국 중 57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에서는 끝에서 4번째에 해당하는 순위다. 올해 보고서에는 2020∼2022년 설문조사 자료가 이용됐다고 한다. 결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직시해야 하는 현실이다. 갤럽세계여론조사(GWP)가 매년 세계 각 국에서 실시하는 주관적 안녕(SWB)에 관한 연례 설문조사 데이터(직전 3년치)를 분석해 내놓는 것이라니 말이다.

    이런 실정이어서 ‘행복추구권’이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걸핏하면 들먹이는 헌법 제10조 전문에 적시돼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의무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국민이 느끼는 행복 점수는 낙제점과 다름없다. 우리 나라가 2022년 IMF 기준 전 세계 경제규모에서 13위를 기록하고 있고 보면 그야말로 이율배반이다.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국민이 감지하는 행복감은 형편 없이 낮은 상황이니 말이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하는 것은 이날 ‘국민총행복증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에 들었다는 사실이다. 헌법에 명시돼 있는 국민 행복에 관한 구체적인 실정법 발의는 헌정 사상 최초의 일이라는 설명이다. 헌법에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명시하고 있지만, 행복추구권을 실제적으로 구현할 실정법이 없는 상태이니 딱하지 않은가? 그런 아이러니에 묻혀 살고 있으니 답답한 것이다. 

    어찌 됐든 춘천 출신인 윤호중(더불어민주당·경기 구리)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했다는 소식이다. 법률 제정안은 국가의 행복지표 개발 및 보급 의무를 명시하게 했단다. 아울러 개발된 지표와 지수를 적용해 지방자치단체의 지역별 특성에 맞는 정책 수립 책무 등을 규정하게 했다니 알량한 기대라도 걸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라고 분명하게 언급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이고, 행복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동서고금, 인류적 화두이자 해묵은 과제이지만 정답은 여전히 모호하다. 하며 ‘왜 행복해야 하는가?’라는 질문도 여전히 유효하다. 철두철미했던 철학자 임마뉴엘 칸트가 제시한 행복조건으로 3가지를 되새기는 이유다.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셋째, 희망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지금 행복한 사람이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세계 190여 나라에 지부가 있는 ‘행복을 위한 행동(Action for Happiness)’이 전개하는 올해 캠페인의 주제가 겸허하게 한다. ‘마음을 돌아보고, 감사하고, 친절하라(Be Mindful. Be Grateful. Be Kind)’다.
    이제 “안녕하십니까?”라는 일상적 인사도 이렇게 대치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행복하십니까?”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