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투명 알권리, 정보공개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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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투명 알권리, 정보공개청구

    [칼럼] 김성권 기획취재팀장

    • 입력 2023.03.02 00:01
    • 수정 2023.03.02 16:46
    • 기자명 김성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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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는 1998년 처음으로 정보공개법을 시행했다. 세계에서 13번째이자 아시아에선 가장 먼저였다. 이 법의 취지는 국민의 '알권리' 보장이다. 정보공개를 의무로 규정해 국정에 대한 국민 참여와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렇게 법이 시행된지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정보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법 개정만 12번을 거쳤고, 1998년부터 2021년까지 1216만여건의 정보공개 청구가 접수됐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첨단시스템(정보공개포털 등)도 구축했다.

    과연 우리 사회의 알권리는 얼마나 발전했을까. 최근 춘천시청 등 행정기관 공무원과 경험한 일을 떠올리면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역설적이게도 정보공개 의무 주체인 공무원들은 이 법을 방패막이 삼아 공개 업무를 주저하고 있다.

    정해진 답변 기한을 활용해 시간을 질질 끌거나, 실제 정보가 있는데도 새로 취합하고 또는 가공해야 한다는 이유로 존재하지 않는 정보라 둘러댄다. 시민들의 알권리를 보장하겠다는 법의 근본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그래픽=박지영 기자)

     

    공무원들은 궁금한 걸 물으면 '정보공개 청구하세요'라는 답변을 자주 한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간단한 정보나, 잠깐 확인해서 말해줘도 될법한 정보인데도 으레 이 절차를 거치라곤 한다. 요구하는 내용도 대부분은 '있을법한' 혹은 의무적으로 '공개했어야 할' 정보다.

    이를테면 킥보드 사고 현황이라든지, 음주운전 적발건수, 시민 혈세를 쓰는 외주용역 현황 등 공익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원래 공개가 원칙인 정보가 누락 돼 알려달라는데도 역시나 절차를 밟으란다. 습관적으로 '정보공개 청구하세요'를 외친다.

    절차라고 하니 청구하지만, 답변을 받는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 현재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10일 안에, 한번 연장하면 20일 안에 답변해야 한다. 이 날짜도 휴일을 제외한 근무일 기준이라 연장할 경우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그동안 청구하는 과정에서 기한보다 일찍 준 경우는 거의 없었다.

    원하는 정보를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기다린 답변이 종종 '부존재'라는 통보로 올 때도 있다. 정보가 없다는 의미다. 그만큼 허탈한 것도 없다. 미리 알려주면 기다리지도 않았을텐데, 연락처를 적어놔도 꼬박 10일을 꽉 채운 뒤에야 이런 답변을 보낸다.

    부존재로 뜨면 과연 정보가 없을까하는 의심도 든다. 시에 설치된 과속단속 카메라의 관리비용이나 보도블록 정비에 들어간 비용 등 없으면 안되는, 시민의 세금이 어떻게 쓰이는지 꼭 알아야 하는 정보들이다.

    춘천시청에 학술연구용역 현황 정보를 요구할 때의 일이다. 취재진은 5년치 정보를 청구했다. 답변기한 10일이 다 되자 담당공무원은 "3년치 자료는 정리된 게 있다, 5년치는 10일 더 걸린다"고 연기 통보를 했다.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3년치를 먼저 달라"고 했더니, "안된다, (연장된) 기한에 맞춰주겠다"고 답했다. 있는 자료든 아니든, 10일 내 답변을 주면 된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정보공개 갑질이나 다름없다.

    정보공개법에 따르면 '즉시 또는 말로 처리가 가능한 정보는 정해진 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 공개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게다가 이런 태도는 '공개 여부의 자의적인 결정, 고의적인 처리 지연 또는 위법한 공개 거부 및 회피 등 부당한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의무 위반이다. 법을 제대로 알고나 '정보공개 청구하세요'를 말하는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사실 취재진이 요청한(현실은 구걸한) 자료는 시 조례상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자료다. 과제 담당관이 업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정보공개청구 대상도 아니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런 정보를 구걸씩이나 하고 있던 셈이다. 정보공개법을 알려줘도 소용이 없다. 결국 시간끌기 하겠다는 공무원을 제쳐두고 상급자에게 요청하니, 다음날 바로 보내줬다.

    법이 시행된지 오래지만, 공무원들 국민의 재산이나 다름없는 정보를 마치 자신들의 소유물인냥 착각하고 있는 듯하다. 법과 규정은 모른 채, 자신들이 임의로 판단해 정보를 줄지 말지를 결정하고 있다. 외려 정보의 주인인 국민이 구걸하는 처지다.

    올해로 정보공개법 시행 26년째다. 국민 누구나, 언제든 정보공개를 청구할 수 있는 환경도 갖췄고, 접근성과 투명성도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알권리의 현주소는 여전히 '반투명'이다.

    법률정보를 찾다보니 '지체없이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은 26년째 변함이 없다. 그동안 기본을 잊고 있었다면, 다시 한번 상기하길 바란다. 만약, 알고도 그랬다면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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