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에 미리 쓰는 유서 ‘사각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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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넷에 미리 쓰는 유서 ‘사각사각’

    청년작가 그룹 808, 춘천 한동국 등 6명
    평균나이 24세, 이태원 참사 계기 ‘죽음’
    50여점 전시, 현시대 청년 고민 보여줘

    • 입력 2023.02.07 00:01
    • 수정 2023.02.08 00:08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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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각사각’전이 오는 12일까지 춘천 동내면 개나리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한승미 기자)
    ‘사각사각’전이 오는 12일까지 춘천 동내면 개나리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한승미 기자)

    “우리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이 글을 남겨요.”

    평균나이 스물넷, 청년작가들이 쓴 유서는 어떤 내용일까.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20대 청년들과 ‘죽음’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최근 6명의 청년작가는 머리를 맞대고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그 결과를 춘천에서 펼쳐 보인다. 

    청년작가 그룹 ‘808’이 기획한 ‘사각사각’ 전시회가 오는 12일까지 춘천 동내면 개나리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 명은 유서를 쓰는 상황을 드러내는 의성어이자 죽음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사각의 평면 회화에 그린다는 중의적인 표현을 담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808’은 춘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동국 작가를 주축으로 한 중앙대 서양화과 출신 선후배 모임이다. 그룹명은 중앙대 미술대학 건물호수에서 딴 것으로 곽현규, 구구, 권원석, 최성우, 한태호 작가 등 6명이 활동하고 있다. 

     

    한동국 작 '유서(Will)'
    한동국 작 '유서(Will)'

    전시는 한동국 작가가 어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서 시작됐다.

    운전면허를 따면서 유서를 미리 써놨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10.29 참사’로 혼란스러움을 느끼던 작가들과 함께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온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길 것인지 등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죽음에 대해 질문하던 이들은 유서를 쓰게 됐고, 고민의 결과를 캔버스 위에 표현하기로 했다. 

    전시 작품은 모두 50여점으로 유화, 아크릴화, 목탄, 펜화, 콜라주 등 다양하다.

    매일의 시간을 기록하는 곽현규 작가는 죽음의 순간 주마등처럼 스치는 삶의 찰나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기억 속에 차곡차곡 새겨진 이미지들을 캔버스에 새기며 삶의 시간을 돌아본다.

    구구(GuGu) 작가는 ‘살자’와 ‘자살’이라는 단어가 갖는 언어 유희적 표현에 착안한 캐릭터 ‘다이 하드(Die hard)’를 창조했다. 반전의 효과를 통해 이중적인 표정을 갖는 캐릭터로 다양한 심리를 표현한다. 

    권원석 작가는 사회의 주역이 되어야 할 청년들이 마주한 현실을 죽음과 연결한다.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하는 시대에 체념하며 패배자가 되어가는 면면들을 증명사진처럼 그려낸다.

     

    최성우 작 '까만 유서' (사진=한승미 기자) 
    최성우 작 '까만 유서' (사진=한승미 기자) 

    최성우 작가는 글로 그림을 그린 작품들을 선보인다.

    나무판에 목탄으로 쓴 유서들로 너무 많은 이야기를 쓰다 보니 새까맣게 가득 찼다. 죽음을 각오하고 쓴 유서는 오히려 삶에 대한 의욕과 생명력을 증명하는 계기가 됐다. 

    사적인 기억을 토대로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현관문’으로 표현해온 한동국 작가는 유서의 내용을 줄거리로 한 9컷 만화를 제작했다. 

    2002년생으로 가장 어린 한태호 작가는 ‘죽음’을 직접 파고들었다. 혐오와 공포 속에서 극단적인 괴물의 형태로 표현된 ‘죽음’의 형상을 그렸다. 

    이번 전시는 청년들과의 소통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고민과 정서를 담은 작품을 통해 이들이 패배와 추락을 부정하지 않고 맞닥뜨린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관람객이 유서를 써볼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 (사진=한승미 기자)
    관람객이 유서를 써볼 수 있도록 조성한 공간. (사진=한승미 기자)

    전시장에는 이들의 생각에 공감할 수 있는 코너도 마련했다.

    전시장 한편에 혼자 있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마련해 유서를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갤러리에 함께 전시되며 이번 기획전을 완성한다. 

    정현경 개나리미술관 관장은 “작가들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죽음을 무겁게만 다루지 않고 있다”며 “지옥 속에서 피어오르는 새로운 젊은 세대의 부상을 지켜보게 한다”고 했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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