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완의 젊은춘천] 저는 여성 창업가입니다.
  • 스크롤 이동 상태바

    [김수완의 젊은춘천] 저는 여성 창업가입니다.

    • 입력 2022.12.07 00:00
    • 수정 2022.12.07 10:23
    • 기자명 낭만농객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수완 낭만농객 대표
    김수완 낭만농객 대표

    “대표님 바디 셰이프(Body Shape)가 예쁜 거 같아요.”

    최근 비즈니스 미팅을 위한 자리에서 멘토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올해 들었던 말 중 가장 불쾌하고 충격적이었습니다.

    “여성 창업가들은 비즈니스 영업을 할 때 남성보다 어느 정도 경쟁 우위가 있다. 그걸 잘 활용하면 좋겠다”는 조언을 듣기도 합니다. 저는 여성으로 태어나 창업을 했지만, 그들이 말하는 ‘여성이기에 가질 수 있는 경쟁 우위’에 공감하지도 누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비즈니스 미팅을 통해 만나는 분들에게 저는 당연히 비혼주의자라고 소개합니다. 한 발표 평가의 질의응답 자리에서 “결혼하고 임신하면 스타트업을 그만둘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를 통해 경쟁해야 하는 우리에게 성별과 외모를 언급하는 일이 오히려 그들의 역량과 가능성을 제한하는 말임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고맙게도 최근 창업 시장에서 젠더 관점의 렌즈를 끼고 기업을 바라보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채용 시장의 블라인드 채용과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젠더 관점 렌즈는 스타트업 시장, 특히 사회 문제에 더 민감한 소셜벤처(사회문제 해결을 목표로 하며 혁신 기술 또는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 투자사들을 주측으로 시작된 동향입니다.

    “안경을 쓰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는 것처럼, 젠더의 안경을 쓰면 세상을 명확하고 다르게 볼 수 있다.”(‘Gender Lens Investing’ 재키 밴더브룩 & 조셉 p 퀸란)

    젠더 관점의 투자란 여성 창업가에게만 투자하라는 의미가 아닌, 성별로 기울어진 투자 시장을 좀 더 명확하게 바라보자는 움직임입니다. 누군가는 “젠더 관점의 렌즈가 여성에게만 기회를 더 많이 주는 역차별이 아닌가”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젠더 관점의 투자가 시작된 사회적 배경과 불평등을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과거의 모든 인권운동의 시작이 그러했듯이요. 사회 혁신이 일어나는 초기엔 어느 정도의 의도성을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의도를 가진 채 젠더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기존 사회 분위기에 녹아 있던 젠더 편향을 드디어 의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젠더 관점의 투자가 지향하는 바는 단순합니다. 평등한 투자 생태계를 조성해 여성들에게 자본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입니다.

    2019년 필자는 여성벤처협회라는 기관에서 받은 창업 교육을 시작으로 창업가가 됐습니다. 여성벤처협회의 설립 목적 자체는 여성 기업인을 활발히 육성하기 위함이지만, 직접 소속되어 살펴보면 아쉬운 면이 많습니다. 당시 동료 창업가 중에 빅사이즈 여성 속옷 브랜드를 만드는 창업가가 있었습니다. 해당 기업이 사업 발표를 할 때의 심사위원들은 모두 남성이었고, 아쉽게도 그들은 빅사이즈 여성이 입는 속옷의 문제점조차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국내 여성 기업 투자 건수 6.6%, 국내 여성 VC(벤처 캐피탈 또는 벤처 투자사) 비율 7%, 글로벌 여성 VC 파트너 비율 4.4%.

    투자 시장에 여성이라는 성별이 존재하긴 하지만 너무 초라한 숫자입니다. 과연 투자 시장과 스타트업 시장에선 당연히 남성이 더 잘 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위와 같은 숫자가 나타났을까요?

    10년 전에 필자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때 신문의 한 기사를 보고 ‘이건 분명 과장된 기사일거야’라고 의심했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대기업 여성 임원의 비율과 그들이 가진 유리천장에 대한 인터뷰 기사였습니다. 10년은 강산도 변하게 한다지만 필자에게 10년은 단지 의심이 공감으로 변했던 시간이 된 거 같습니다.

    2022년 현재 필자의 칼럼을 읽고 있는 한 명의 고등학생이 있다면 10년 후에는 그가 성별의 편향 없는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저작권자 © MS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