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I부터 찍읍시다”⋯건강보험 재정 줄줄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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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RI부터 찍읍시다”⋯건강보험 재정 줄줄 샌다

    [당신의 건보료는 안녕하십니까] 1. 부담금 노리는 과잉진료
    춘천 모 의원 '의사 만나기 전, 엑스레이는 필수'
    공단수가 노린 ‘과잉진료’, 양심있는 의사들이 피해
    도덕적 해이 막을 구조적 장치 마련 필요

    • 입력 2022.12.01 00:02
    • 수정 2022.12.22 11:50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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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8년 국민건강보험 적립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내년부터 직장인들의 건강보험료율은 사상 처음으로 7%대에 진입한다. 시민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는 계속 오르는데 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국민건강보험의 구조적 문제와 도덕적 해이에 대해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25일 오후 춘천의 한 정형외과 의원. 진찰을 기다리던 한 노인에게 간호사가 X선 촬영(X-ray)부터 하자며 촬영실 입장을 권유했다. 그러자 노인은 “진찰도 안 받았는데 어디가 어떻게 아픈 줄 알고 사진부터 찍냐”며 항의했다. 그제야 의료진은 그를 데리고 진찰실로 향했다. 무릎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기자를 가장 먼저 부른 곳도 역시 X선 촬영실이었다. 세 차례가 넘는 촬영을 마친 후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사진에 대한 의사 소견은 “원인 불명”이었다. X선으로는 자세히 알 수 없으니 자기공명영상(MRI)을 찍어야 통증의 원인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MRI는 다소 가격이 비싸 부담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이긴 했으나 결론은 “X선 사진만 가지곤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기자를 진찰한 의사는 “요즘은 환자들도 전문적이라 괜찮다, 아니다를 함부로 말할 수 없다”며 “자세한 건 검사를 더 받아봐야 말씀드릴 수 있다”고 했다.

    X선 촬영과 진찰로 기자가 지출한 비용은 1만2700원이지만 이번 병원 방문으로 실제 발생한 전체 비용은 4만2640원이다. 본인부담금 1만2700원(29.8%)을 뺀 나머지 2만9940원(70.2%)은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나오는 ‘공단 부담금’으로 충당됐다.

     

    정형외과 의원 방문으로 발생한 진료비 구성. (그래픽=박지영 기자)
    정형외과 의원 방문으로 발생한 진료비 구성. (그래픽=박지영 기자)

    국민건강보험 재정부담이 커지고 이르면 2028년부터 적립금 고갈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환자들 중 일부는 병원에서 과잉 진료를 권하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환자는 전문 지식이 부족하고, 진료비의 환자 본인 부담분이 작다는 점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건강보험공단 부담금 수익을 노리고 과잉진료를 권한다 해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일부 비양심적인 병원에서 건강보험 재정이 줄줄 새고 있다고 해도 손 쓸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의사도 보기 전에 “X선 촬영”, 찍고 나니 “MRI도”

    ‘의원급’에 포함되는 해당 병원은 국민건강보험 기준에 따라 진료비 총액의 30%만 환자 본인에게 청구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규모에 따라 진료비의 본인부담률은 달라지는데 임신부, 1세 미만, 의약분업 예외환자 등이 아닌 일반 환자일 경우 대체로 △대학병원 60% △종합병원 45~50% △병원급 40% △의원급 30% 등이 적용된다.

    기자가 만약 MRI 검사를 추가로 받았다고 가정하면 진료비 30만원이 발생했을 것이다. 이 중 9만원(30%)만 환자 본인부담금이고, 나머지 21만원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출되는 금액이다. 환자가 실제 체감하는 진료비는 9만원이나 병원에서는 MRI 촬영 한 번으로 30만원을 벌게 된다.

    ▶과잉진료, 느슨한 ‘공단 부담금’ 노렸나

    일부 의료기관에선 환자가 체감하는 금액이 실제보다 적다는 점을 이용해 과잉 및 추가 진료를 벌이는 경우도 발생한다. 동내면에 거주하는 50대 A씨는 관절에 통증을 느껴 최근 한 정형외과를 찾았다. 담당 의사는 자세한 설명 없이 MRI, 혈액, 초음파 등 각종 검사를 지시했다.

    검사를 마친 후 소견을 들으러 간 A씨에게 의사는 초음파 검사에 대한 소견만 몇 마디 덧붙일 뿐 그 외 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소견을 건너뛸 만큼 건강에 이상이 없는 건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검사를 받게 한 건 아닌지 필요성이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A씨는 “검사를 그렇게 많이 했는데도 관련 설명도 없이 주사 하나 맞고 진료가 끝났다”며 “의사가 오히려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는지 물어봤다”고 말했다.

    각종 검사로 발생한 진료비 총액은 150만원. 그러나 진료를 마친 그에게 직접 청구된 ‘본인부담금’은 45만원(30%)뿐이었다. 나머지 금액은 ‘공단 부담금’이라는 이름으로 건강보험공단이 지출했다. 이유도, 결과도 모르는 검사로 건보 재정에서 빠져나간 돈은 105만원에 달했다.

    민간 보험회사의 실손보험 상품에 가입돼 있다면 환자가 부담하는 금액은 훨씬 더 줄어든다. 국민건강보험으로 보장받을 수 없는 본인부담금 중 80%까지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총 진료비 150만원이 나왔던 위 사례에서 실손보험을 통해 보장받았다면, 환자가 내야 하는 금액은 9만원까지 줄어든다. 이처럼 실제 진료 비용에 비해 환자의 자부담금은 매우 적기 때문에 만약 병원에서 필요 여부에 상관없이, 소견도 없이 과잉으로 각종 검사를 진행해도 그 이익은 의료기관이, 부담은 고스란히 건강보험 재정이 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공단 부담금을 노린 과잉진료에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공단 부담금을 노린 과잉진료에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되는 등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 (그래픽=박지영 기자) 

    ▶마구잡이 재정 지출하는 도덕적 해이 우려

    보험연구원은 국민건강보험이 의료서비스 선택의 주체가 환자라는 가정하에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을 증가시키는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킬 우려가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자기부담금, 공단 부담금으로 진료비 청구가 이원화돼 환자가 부담하는 지출이 감소하는 점을 노려 과도한 의료이용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의료기관은 정확한 진단을 위해 여러 가지 진료, 치료법을 시도한다. 이를 모두 과잉진료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김기성 대한의사협회 보험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의사 입장에서는 수많은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만약의 경우 의료 소송 등이 발생할 수 있어 놓치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방어적인 진료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문제는 일부 비양심적인 의료기관의 과잉 진료, 즉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면서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하고, 이로 인해 다수의 환자들과 양심적인 의사들까지 피해를 본다는 점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은 "일괄적인 수가를 정하고 강화된 비급여 청구 심사를 담당할 관리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비급여 수가 측정 통계를 수집하고 통계를 기반으로 해외 우수 사례 등을 참고해 앞으로 건강보험에 적용할 기준이나 상한선을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소담·최민준 기자 ksodamk@mstoday.co.kr]

    [확인=한상혁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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