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시대를 사는 어른을 위한 인형극⋯춘천시립인형극단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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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시대를 사는 어른을 위한 인형극⋯춘천시립인형극단 ‘변신’

    춘천시립인형극단 인형극장서 ‘변신’ 초연
    프란츠 카프카 소설 원작, 인간 본질 다뤄
    관람객 14세 이상으로 제한, 실험적 도전
    섬세한 움직임 위해 객석 무대 위로 올려

    • 입력 2022.11.18 00:00
    • 수정 2022.11.19 00:12
    • 기자명 한승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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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벌레, 공붓벌레, 일벌레⋯.

    과거 성실함의 이미지를 강조하던 ‘벌레’라는 단어는 어느 순간 혐오의 단어로 변질됐다. 맘충과 이백충, 틀딱충, 설명충 등 특정 집단에 벌레를 뜻하는 충(蟲)이라는 접미어를 더한 합성어는 나와 다른 상대를 구분 짓고 사회를 갈라놓는다. 이런 혐오와 차별이 과연 현시대에만 존재하는 문제였을까. 

    100여년 전 이 같은 시대상을 예측한 소설이 인형극이 돼 무대에 오른다.

    춘천시립인형극단은 18일과 19일 춘천인형극장 대극장에서 ‘변신’을 초연한다. 극단의 세 번째 정기공연 작품이다. 

     

    춘천시립극단이 '변신'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나서고 있다. (사진=춘천시립인형극단)
    춘천시립극단이 '변신' 공연을 앞두고 연습에 나서고 있다. (사진=춘천시립인형극단)

    ‘변신’은 세계적인 대문호 프란츠 카프카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915년 출간된 원작은 어느 날 갑자기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남자, 그레고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사람이 벌레로 변했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그 변신으로 인해 겪게 되는 상황들은 극도로 현실적이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자 그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레고르는 경제력 상실과 소통의 부재, 가족의 변심 등을 통해 점점 사회에서 소외되어 간다. 과거의 작품이지만, 현대사회에도 만연한 소외 문제와 인간성 상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극단의 작품은 원작을 충실히 따라가면서도 인간 소외라는 주제를 더욱 명확히 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그레고르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원작과 달리 가족과의 관계를 두드러지게 표현한다. 극 말미에 연출자의 해석이 가미된 색다른 결말도 확인할 수 있다. 

    또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 표현을 위해 다양한 시도에 나섰다.

    인물이 처한 상황이나 영혼의 상태를 관객에게 전달하기 위해 직접적인 노출을 대신한 표현법을 고심, 여러 형태로 묘사할 예정이다. 이는 카프카의 뜻을 따른 것이기도 하다. 카프카는 독자의 상상력을 위해 초판 표지에 벌레 삽화를 넣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병훈 연출이 '변신' 공연을 위해 배우들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춘천시립인형극단)
    이병훈 연출이 '변신' 공연을 위해 배우들을 지도하고 있다. (사진=춘천시립인형극단)

    공연 구성과 연출을 맡은 이병훈 연출은 무대와 객석 등에도 공을 들였다.

    이번 공연의 객석은 무대 아래가 아니라 무대 위에 마련된다. 관객과 배우가 가까운 거리에서 호흡하고 인형의 움직임에 담긴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함이다. 관객이 등장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번 작품은 ‘어른들을 위한 인형극’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관람 연령을 14세 이상으로 제한하기도 했다. 인형극의 주 관람객이 어린이와 이를 동반한 가족 관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파격적인 결정이라고 볼 수 있다. 공립 인형극단으로서 역할을 되새겨보는 시도로 연령층 확장성의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이병훈 연출은 “인간의 존엄성보다 시스템의 부속품으로 존재하는 현실의 모습이 산업혁명기 사회구조와 매우 유사하다”며 “보이지 않는 공포와 위협을 인형극으로 만들어 우리 시대의 불안과 청년의 고뇌를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원작 내용을 인형극이라는 도구를 통해 흥미롭게 표현하고자 한다”며 “이번 공연이 현실에 가려있는 삶의 진실을 마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승미 기자 singme@mstoday.co.kr]

    [확인=윤수용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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