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베트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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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베트남 이야기

    • 입력 2022.11.15 00:00
    • 수정 2022.11.16 02:24
    • 기자명 책읽는춘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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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하노이 3년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지인들의 반응은 대부분 더운 나라에서 얼마나 고생했느냐 하는 위로였다.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던 더위와 오토바이 소음 등으로 고생스러웠던 점은 사실이다. 지인들의 관점에는 전쟁, 쌀국수, 하롱베이, 박항서 감독, 아오자이, 라이따이한 등이 아직도 베트남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보였다.

    베트남에 근무하는 동안 필자가 접한 베트남의 정치, 경제, 언어, 역사, 문화, 생활은 이 나라가 일주일의 여행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님은 분명해 보였다. 베트남은 천혜의 자원, 우수한 인재, 불굴의 역사, 밝은 미래를 가진 나라다. 이 나라가 우리를 좋아하고, 함께 길을 가자고 청하는 것은 아주 기쁜 일이다. 즐거운 미래 여행을 위해 동반자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베트남은 약 33만㎢의 면적에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1650㎞, 해안선 길이 3260㎞의 비교적 큰 나라다. 약 1억명의 인구, 63개의 직할시와 성(省), 54개 민족으로 구성된 이 나라는 삼모작이 가능한 기후, 어디 가나 넘쳐나는 열대과일, 풍부한 수량으로 먹고사는 일에는 별다른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나라다. 하롱베이, 다낭, 푸꾸옥, 퀴논, 나트랑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국토 이곳저곳에 넘쳐난다. 판시판산을 비롯한 3000m가 넘는 산 5개를 포함해 전 국토의 70%가 산지다. 다른 한편으로 메콩강 및 홍강 유역의 비옥한 평야로 세계 제2의 쌀 수출국이자 세계 2위 커피 생산국이며 산유국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베트남은 강인한 민족성과 우수한 인적 자원을 가진 나라다. 수천년의 역사 속에 평온한 적이 거의 없던 이 나라는 중국, 프랑스, 미국, 일본 등 강대국과 싸워 승리한 세계 유일의 나라다. 각 분야에 뛰어난 인재도 즐비하다. 전쟁 중에도 5만명의 유학생(호치민 유학생으로 불리며, 종전 후 베트남 각계각층의 요직 인사로 성장)을 세계 각국으로 보내 전쟁 후 조국 중흥의 인재를 키웠다.

    이런 교육 중시 문화로 베트남에는 수학의 필즈상 수상자(응오 바우 쩌우는 2010년 필즈상을 받았으며 현재 미국 시카고대학교 교수로 재직),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자(당 타이 손은 1980년 아시아인 최초로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 우승을 거머쥔 인물), 우주 비행사(팜 뚜언은 1980년 7월 23일 발사된 소련의 우주선 소유스 37호에 탑승한 아시아 최초 우주인), 노벨평화상 거부자(1973년 베트남 종전협정 북베트남 대표 레둑토는 아직 조국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노벨평화상 수상을 거부했고, 미국 대표인 헨리 키신저는 상을 기꺼이 수상)까지 있다.

    우리나라와 베트남의 인연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226년 고려 고종 때 베트남 왕자 리롱뜨엉(李龍祥)은 가족 및 측근들과 함께 황해도 옹진군 화산면에 도착했다. 베트남에서 정변이 일어나 이씨(李氏) 왕조가 망하고 진씨(陳氏) 왕조가 건국되면서 멸족을 피해 탈출했던 것이다. 원래 중국 송나라로 가고자 했으나 도중에 풍랑을 만나 고려에 도착한 것이다.

    안남왕자의 도착을 보고 받은 고종은 식읍(食邑)을 하사하고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해 극진히 대우했다. 이용상은 고려 조정의 환대에 크게 감동했고 몽고 침략 시 큰 공을 세워 관직이 더욱 높아졌으며 화산이씨(花山李氏)의 시조가 됐다. 현재 전국에는 560여 가구 1800여명의 화산이씨 후손이 살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화산이씨를 베트남 왕족의 후손으로 인정해 베트남 이주, 건물 및 토지 구매, 각종 사업권 등에서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하고 있다.

    2021년 현재 국내 거주 베트남인은 약 18만명에 이르며, 거의 같은 수의 한국인이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다. 베트남 여성이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 사는 국제결혼 이민자는 약 4만명으로, 이름 그대로 베트남은 이제 ‘사돈의 나라’다. 국내 학교에 재학하는 한국-베트남 가정의 다문화 학생 수는 약 4만6000명에 이르며, 두 번째로 많은 3만5000여명의 중국계를 압도하고 있다. 2021년 한국의 베트남 수출액은 약 561억 달러로, 우리나라의 베트남 무역수지 흑자는 한화로 30조원을 넘고 있다. 베트남에서 연간 7회 시행되는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 희망자는 매회 수만명에 이르고 있다.

    천혜의 자원과 우수한 인적 자원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 후진국에 만연돼 있는 관리들의 부정부패, 공산주의 체제 공통의 도시와 농촌, 당원과 비당원 간의 빈부격차 역시 베트남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의 교육 수준과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높아지게 될 정치적 관심은 이 나라의 나아갈 길이 그리 평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세계 어디에도 베트남만큼 한국에 우호적인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국민 평균나이 30세(우리나라는 43세)의 젊은 베트남이 우리를 좋아하고, 더 알고 싶어 하고, 함께 가고자 한다면 우리가 할 역할은 분명하다. 오랜 전쟁으로 물려받은 유산이란 가난과 자존심밖에 없는 베트남에게 세계 중심국가 한국이 든든한 동반자로서 그동안 축적한 유용한 경험을 나눠준다면 우리 역시 든든한 젊은 친구를 옆에 두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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