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선의 예감] 그렇더라도 향토문화제는 살아야 한다
  • 스크롤 이동 상태바

    [용호선의 예감] 그렇더라도 향토문화제는 살아야 한다

    • 입력 2022.11.04 00:00
    • 수정 2022.11.05 00:06
    • 기자명 용호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말문을 열어야 할 상황이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서로 간의 안녕을 기원한다. 이태원 사고의 충격이 워낙 드세서다. 비통해 하는 심정에 위로를 먼저 전하며 사태의 조속한 수습을 주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말로써 비통함을 표현할 길 없어 참담하다”는 갸륵한 고백을 되새기면서⋯.

    화불단행(禍不單行)이라 했다. 화(禍), 재앙은 하나로 그치지 않고 잇따른다는 충고다. 코로나19 팬더믹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는가 싶었던 시점에서 발생한 참사여서 그 충고를 곱씹게 된다.

    우선은 사고 여파의 직격탄을 맞은 민생, 그중에서도 문화예술 분야의 난망함이다. 상징적인 사례가 먹먹하게 한다. 정서적 고향이 강원도의 탄광지역이라고 했다. 자신은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6‧25전쟁 피난민으로 북녘에서 월남한 부모와 삼촌, 고모들은 그곳에 정착, 가정을 꾸렸다고 했다. 국내외에서 두루 주목받는 피아니스트이자 대학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그에게 필자는 “안내해 드릴테니 부모님의 제2의 고향인 그곳에 가보시겠냐?”고 물었다. 이야기는 일사천리, 피난민을 보듬어 준 그곳 주민을 위해 보은의 연주회를 열어드리는 재능기부로 전개됐다.

    기특함에 감복한 해당 지자체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편의를 제공, 연주회 일정을 잡고 프로그램을 꾸렸다. 국내에서보다 유럽 각국에서 더 명성이 높다는 동료 성악가‧교수도 가세했으니 기대 만발. 그는 연주회를 주선해 준 필자에게 “정중하게 모시고 가서 감동의 무대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당연히 저의 부모님과 고모님들도 모십니다”라며 초대했다.

    이미 현지에는 포스터가 나붙었고, 언론사에 기특한 사연을 전하며 취재를 부탁해 놓기도 했다. 그런데, 아뿔싸. 손꼽아 기다리던 날을 이틀 앞두고 “취소됐습니다”라는 맥 빠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민애도기간’이 선포돼야 할 상황으로 판단해 무기한 연기하기로 했다”는 통보였다.

    산란한 심정을 다잡아 컴퓨터 자판을 두드린다. 필자의 코너 문구에 ‘예감’을 달았으니 주제를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에 예정했던 테마를 추스르며 제목부터 달았다. ‘그렇더라도 향토문화제는 살아야 한다.’ 더는 흔들리지 말자는 다짐이다. 

    지난주 춘천문화원에서 소양강문화제 평가회가 있었다. ms투데이에 나온 기사 제목이 “소양강문화제 4년만 정상 개최⋯‘시민 주도형’으로 열려”였으니 그 의미를 짐작하게 된다. 코로나19 팬데믹 탓에 오랜만에 치른 춘천의 전통문화 향연의 성찰 기회로 마련한 자리였다. 평은 시작부터 준엄했다. 미리 준비해온 문서를 근거로 목소리를 높인 이가 있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젊은 위원은 행사가 추구해 나가야 할 방향을 예리하게 제시했다.

    올해 소양강문화제는 43회째였다. 1966년 ‘개나리문화제’로 출발했으니 장구한 세월을 넘어온 게 사실이다. 인터넷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오늘날 춘천을 대표하는 지역문화제로서 전통문화와⋯”라고 적혀 있으니 행사의 성격을 가늠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문화제의 공감지수다. ‘춘천의 전통문화를 제대로 드러내 보였냐’는 본질적 측면에서 보통 아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날 평가회에서도 언급했지만 ‘천년의 어울림’을 내세워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강릉단오제는 고사하고, 원주의 강원감영제에 비해서도 ‘춘천을 대표하는 향토문화제’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하다.

    강원도의 옛 명칭은 예맥(濊貊)이다. 강릉을 중심으로 하는 예국과 춘천을 토대로 세거했던 맥국을 아우른 용어다. 두 고대국가가 주축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예국의 후예들은 단오제를 오롯이 이어오고 있는데 반해 맥국 후손들의 소양강문화제는 딱하기만 하다. 올해의 사정을 짚어 보면 우선은 준비기간이 단 3개월에 불과했다. 춘천시의 지원금은 고작 1억원, 이것도 당초 예산으로 나온 게 아니라 추경 예산으로 확보한 것이었다. 

    조선시대 이중환은 주저 ‘택리지(擇里志)’에서 “소양강변의 춘천은 맥국 천년의 고도로 (⋯) 세거하는 사대부가 많이 살고 있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수계로 가장 살기 좋은 곳은 대동강변의 평양이고 둘째로 춘천의 소양강 수계를 들고 있는데,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 맥국 때부터 전해 내려온 인식이다”라고 적었다. 인류문명이 강변에서 태동했다는 사실과 같은 맥락이다. 명칭이 그렇듯 소양강문화제의 근간은 고대로부터 ‘살기 좋은 고장’이었다는 근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 유구한 맥락이 오늘날에까지 깃든 면모를 내보여야 마땅하다. 춘천의 대동제(大同祭)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지역에서 펼쳐지는 이런저런 문화행사·프로그램을 이삭줍기식으로 모아놓고, 이를 ‘봐 달라’고 애걸하는 행사에 발걸음이 모여들기를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문화는 ‘만들어진 전통(에릭 홉스봄 외 저, 후마니스트 간)’이다. 그날 평가회에서 필자가 제안한 사안을 거듭 강조해 밝힌다. 당장, 내년 제44회 소양강문화제 개최를 위한 기획위원회부터 가동하시라.

    기사를 읽고 드는 감정은? 이 기사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4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