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레고랜드는 외국계 회사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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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수첩] “레고랜드는 외국계 회사라서요”

    • 입력 2022.11.02 00:00
    • 수정 2022.11.03 06:05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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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는 테마파크를 겨울철 3개월간 휴장한다고 공지했다. 지난달 기자가 이에 대한 첩보를 듣고 휴장 계획에 대한 사실 확인을 요청했을 때만 해도 “사실무근”이라며 당당했던 레고랜드였다. 그런데 바로 며칠 뒤 레고랜드가 휴장 계획을 확정해 발표하고, 최근 자금시장 경색과 관련해 레고랜드가 파행 운영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자 말이 달라졌다. “사실무근“이었던 휴장 계획이 “최근의 상황과는 상관없이 오랜 기간 검토해온 사안”으로 바뀌었다. ‘오랜 기간 검토한 사안’을 ‘사실무근’이라고 둘러댔던 셈이다.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에는 현재 70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지난해 12월 레고랜드가 강원도일자리재단과 함께 채용 설명회를 열면서 1400여명의 인력을 고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던 것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 그치는 규모다. 그마저도 대부분 단기계약직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업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는 크레딧잡을 통해 레고랜드 코리아의 고용 창출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 분석해봤다. 국민연금은 월 소득액을 기준으로 의무 공제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가입자 자료를 통해 고용 현황과 임금 수준을 추적할 수 있다.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의 고용 현황. (그래픽=박지영 기자)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의 고용 현황. (그래픽=박지영 기자)

    올해 9월 기준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에 다니는 근로자는 총 726명이다. 개장 직후인 6월 고용 인원이 812명 수준이었던 것으로 고려하면 3개월 만에 86명(11%) 감소했다. 장마와 폭염으로 방문객이 줄었던 여름철에는 퇴사자가 늘었다. 레고랜드 퇴사자 규모는 6월 45명에 그쳤으나 7월 75명, 8월 69명, 9월 67명 등으로 증가했다. 7~9월은 신규 입사자보다 퇴사하는 사람의 수가 더 많았다. 최근 1년간 국민연금 상실자의 총합을 월평균 재직 인원으로 나눈 ‘퇴사율’은 80% 수준인데, 이는 동종업계 평균인 53%보다 훨씬 높다. 그만큼 고용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개장을 앞두고 대규모 채용됐던 근로자들은 소득 수준도 높지 않았다. 올해 1월까지 레고랜드 직원들의 월평균 급여는 486만원이었다. 놀이기구 안전 관리 기술자 등 오랜 경력을 요구하는 직무가 대부분이라 급여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강원도와 약속했던 지역 청년에 대한 채용이 대폭 늘어난 이후 평균 급여는 2월 421만원, 3월 353만원, 4월 287만원, 5월 226만원 등으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올해 9월 기준 레고랜드 근로자들의 평균 급여는 월 235만원에 그친다.

    문제는 강원도에서조차도 레고랜드 코리아의 고용 규모나 근로자 처우에 대한 파악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원도 투자유치과 관계자는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는 별도로 운영되는 법인이기 때문에 도에서 가지고 있는 고용 인원 관련 자료는 없다”고 밝혔다. 아무리 도지사가 바뀌기 전 일이라고 해도, 혈세 7000억원을 직간접적으로 쏟아부은 사업에 대한 기본적인 성과도 조사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되짚어봐야 한다.

    이번 레고랜드 휴장 소식을 듣고 우려됐던 것 중 하나가 ‘대규모 실직’이었다. 레고랜드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모델시티즌’은 파크 운영과 식음료‧상품 판매, 호텔 서비스를 담당한다. 구인‧구직 플랫폼에 올라온 채용공고를 보면, 콜센터‧예약실 운영 직무만 1년 계약직일 뿐, 절대다수가 ‘단기계약직’이다. 레고랜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휴장 기간 (정규직) 직원들의 보수는 100% 지급될 것이며, 계약직 직원의 경우 고용 계약 시점까지 고용을 이행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불가피하게 휴장 기간인 1~3월 중 고용 계약이 끝나는 경우 재계약 여부는 각 부서에서 재량으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레고랜드 전망대에서 바라본 강 건너 춘천 시내 방면. (사진=MS투데이 DB)
    레고랜드 테마파크 전망대에서는 춘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역사회에 대한 레고랜드의 책임감 있는 윤리 경영이 과제로 남았다. (사진=MS투데이 DB)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강원본부는 최근 성명을 발표하고 노동자의 고용과 삶에 대해 무관심한 강원도와 레고랜드를 규탄했다. 3개월간의 전체 휴장으로 단기계약직 직원들이 집단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 때문이다.

    김정도 민주노총 강원본부 총무부장은 “레고랜드의 개발이익, 값싸고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력에 의한 생산이익은 청년과 노동자, 강원도민을 위한 것이 아닌 투기 자본을 위한 것이었다”며 “이번 휴장으로 대규모 실업에 따른 심각한 지역 사회 경기침체가 우려되지만, 대책 마련과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강원도가 홍보해온 레고랜드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레고랜드가 주장하는 ‘지역 사회와의 상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비정규 노동자의 총고용 보장’을 약속해야 한다는 논지다.

    레고랜드 직원들과의 대화는 매번 비슷한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저희는 외국계 회사라서요⋯.” ‘외국계’ 회사라고 해서 터전을 둔 지역 경제에 무관심하고, 언론의 비판에도 꼼짝하지 않고, 지자체라는 방패 뒤에 숨어도 되는 ‘면죄부’가 있는 것은 아니다. 좀 더 책임감 있는 레고랜드 코리아의 모습을 기대한다.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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