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 세우기식 평가는 죄악’이라는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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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 세우기식 평가는 죄악’이라는 프레임

    ■ [MS투데이 칼럼] 한상혁 콘텐츠2국장

    • 입력 2022.11.03 00:01
    • 수정 2022.11.07 09:05
    • 기자명 한상혁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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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혁 콘텐츠2국장
    한상혁 콘텐츠2국장

    강원도 학생들에 대한 학력평가가 일단 ‘반쪽짜리’로 출발하게 됐다. 이달 시행하는 강원학생성장진단평가에 도내 초·중학교 10개 학교 중 6개 학교가 참여 의사를 밝혔다. 전체 513개 학교 중 309개 학교가 참여하는 것으로, 이 가운데 초등학교는 229개 학교, 중학교는 80개 학교다.

    이번 시험이 도입되기까지는 시험의 목적에 관해 첨예한 논쟁이 이어졌으며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강원지부를 중심으로 하는 시험 반대론자들은 이번 시험이 일제고사, 혹은 줄 세우기라고 비판한다. 학생들을 시험 성적에 따라 줄 세우는 것이 비교육적이라는 논리다.

    일제고사와 줄 세우기식 평가가 죄악이라는 논리는 이미 교육계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전교조와 교육청의 단체협약에 따라 초등학교에서는 이미 ‘시험’ 자체가 없어진 지 오래다. 이명박 정부 때 도입됐던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는 학교 서열화를 비롯한 각종 부작용 논란으로 2017년에 폐지됐다.

    이에 따라 시험을 도입하려는 강원도교육청과 시험 찬성론자들은 강원학생성장진단평가가 ‘줄 세우기식 일제고사가 아니라는 점’을 방어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교육청은 “학생성장진단평가 결과는 학생 개인과 교사, 학부모에게만 제공하는 것이므로 학교별 서열화와 줄 세우기와 관계없다”고 했다. 이번 시험 도입을 주도한 신경호 교육감마저 국감에서 강원형 학생성장진단평가가 ‘일제고사냐’라는 질문에 “일제고사가 아니다”라고 했고, “일제고사를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반대한다”고 했다.

    이런 흐름으로 진행되는 논쟁을 따라가다 보면 교육계가 전교조에서 만든 프레임에 빠져 있음이 확인된다. 일제고사가 아니라고 반박하다 보니 어느새 ‘일제고사는 죄악’이라는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신 교육감의 발언 하나가 이목을 끈다. ‘강원학생성장진단평가’ 필요성에 대해 학부모의 81%가 긍정 응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시험도 공부다. 그동안 평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국 최하위 성적이라는 결과가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공부를 시켜야 하지 않겠느냐.”

    이 말은 시험과 관련한 논쟁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학생들은 천성적으로 공부하기를 싫어한다. 전국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서울대에서도 마찬가지다. 해야 하니까, 할 만하니까 공부를 하지만 공부가 좋아서 하는 경우는 없다.

    이런 아이들에게 시험은 억지로라도 공부를 하도록 만드는 최적의 수단이자 혁신적인 발명품이다. 학생들은 시험에서 부모, 교사나 친구에게, 혹은 나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억지로라도 책을 들여다본다. 대입 수학능력 평가뿐만 아니라 어렵다는 고시, 변호사, 회계사 같은 자격증 시험, 영어 점수, 하다못해 운전면허 시험도 마찬가지다. 시험 때문에 힘들게 한 공부의 과실은 시험 문제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 힘든 공부를 참아내며 시험을 친 수험생에게 주어진다.

    전교조와 일부 어른들이 시험을 빼앗아 간 결과 아이들은 당장 생활이 편해졌을지는 모르나, 그 결과는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당장 초등학교에선 부모가 아이의 시험 성적을 모르니 아이가 어떤 과목에 소질과 흥미가 있는지, 아니면 공부 자체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다. 그 결과로 자기가 타고난 재능이 있어도 발휘하지 못하고 인생을 낭비할 가능성이 커진다. 시험을 빼앗긴 강원도 학생들의 학력 저하 문제는 구태여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는 결과 생겨나는 또 다른 문제는 돈 있는 집 아이들만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않으니 수십만원씩 돈을 들여 학원에 보낸다.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도 학원에 앉아 있는 동안에는 억지로라도 공부하기 때문이다. 학원 다니는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고, 학교에 열심히 다니는 학생들은 공부를 못한다. 혹시 이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시험 반대론자들의 숨은 의도인가 의심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강원도교육청은 일제고사가 죄악이라는 프레임 자체를 바꾸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이 밝힌 대로 일단 전교조 출신 전 교육감과 교육청이 맺은 단체협약의 대못을 빼야 한다. 그래서 올해가 아니면 내년 이후부터라도 학생들에게 시험을 돌려줘야 한다. 물론 시험을 본다고 해서 모두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은 아니다. 시험이 있다고 해도 절반 이상의 아이들은 어떻게든 공부를 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하지만 시험이 없으면 아무도 공부하지 않는다. 신 교육감 말대로 시험도 공부다. 더 나아가 시험이 곧 공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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