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익의 교육만평] 인종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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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의 교육만평] 인종 차별

    • 입력 2022.11.01 00:00
    • 수정 2022.11.01 13:51
    • 기자명 책읽는춘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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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최광익 책읽는춘천 대표

    지난 8월 토트넘과 첼시의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웃통을 벗은 한 팬이 코너킥을 차려는 손흥민을 향해 자신의 눈을 찢는 제스처를 취했다. 동양인을 비하할 때 쓰는 이 행동은 중계화면에 포착되어 영국 소셜 미디어로 퍼져서 큰 논란이 일었다. 현재 유럽에서 뛰고 있는 황희찬, 이재성뿐 아니라 과거 박지성, 안정환까지 인종 차별의 경험은 처음이 아니다.

    인종 차별의 무대를 미국으로 옮기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 뉴욕시는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히틀러에게 적합한 처벌은 무엇인가라는 과제를 공모한 적이 있다. 1등으로 당선되어 대학 4년 장학금을 받은 한 흑인 여학생의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히틀러에게 검은 살가죽을 입혀서 미국에서 살게 하는 것이다.” 인종 차별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에서의 인종 차별 역사는 길고도 교묘하다. 노예 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차별을 정당화하는 여러 가지 법규들이 등장했다. 공공장소에서 흑백 분리를 선언한 짐 크로법(Jim Crow laws), 비백인과 결혼한 백인 여성의 시민권을 박탈하는 버지니아의 인종보전법(Racial Integrity Act of 1924), 조상 중 흑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였으면 흑인으로 간주하는 피 한 방울의 법칙(One-drop Rule), 흑백 분리가 ‘분리되었지만 평등한(separate but equal)’ 것이라는 1896년 미국 연방대법원 판결 등 차별은 합법성을 띠는 모습으로 계속됐다.

    다행히도 1954년 미 연방대법원 판결이 흑백 분리 종료의 불을 당겼다. 1951년 캔자스주 토피카시에 살던 흑인 소녀 린다는 집 앞의 학교가 백인 전용이었기에, 버스를 타고 먼 곳에 있는 학교에 다녀야 했다. 린다의 아버지 올리버 브라운은 이런 불공평한 일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같은 처지의 학부모 12명과 함께 토피카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이 사건을 ‘브라운 대(對) 토피카 교육위원회 재판’이라고 부른다). 캔자스주 법원은 백인학교와 흑인학교가 분리돼 있더라도 시설, 교육과정, 교사 수준 등이 비슷하기 때문에 차별은 아니라며 교육위원회의 손을 들어주었다. 학부모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항소해 1954년 연방대법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게 된다.

    당시 연방 대법관들은 흑백 분리 정책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심리학자와 사회학자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린 학생들을 분리하는 것은 흑인 학생들에게 열등감과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으며, 백인 학생들도 다양한 인종과 함께 교육받아야 사회에 나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기에 인종을 나눠 교육하는 것은 모든 학생에게 큰 문제가 된다”며 만장일치로 흑백 분리를 위헌으로 판결했다.

    그러나 이 판결로 흑백 분리가 끝난 것은 아니다. 1957년 아칸소주의 리틀록에 있는 한 명문고등학교에 성적이 우수한 흑인 학생 9명이 입학하게 됐다. 하지만 많은 백인 학부모들은 이들의 입학을 반대했고, 특히 당시 아칸소 주지사는 극렬 인종 차별주의자로 주방위군을 학교로 보내 흑인 학생들의 학교 진입을 막았다. 결국 흑인 학생 9명은 첫 등교 날짜에 등교하지 못했고, 다음날도 등교를 시도했으나 학교에 들어갈 수 없었다. 당시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는 연방군 투입을 명령했고, 연방군과 주방위군이 대치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합중국 군 통수권자로 아칸소 주방위군의 통수권을 아칸소 주지사에게서 회수함으로써 주지사는 백기투항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1971년 미국 교육부는 인종이 통합된 사회 구현을 위해 ‘용광로 학교(school as a melting pot)’ 정책을 운영하게 된다. 즉, 다양한 인종이 학교라는 용광로를 통해 오직 미국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정책이다. 모든 공립학교는 다양한 인종이 한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는 통합학교로 재조정됐고,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학생들의 등교를 위해 스쿨버스 제도가 도입됐다. 그때부터 스쿨버스는 인종통합의 상징이 됐다.

    스페인 정복자들의 남미 원주민 학살에서부터 나치의 유대인 홀로코스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까지 인종 차별의 역사를 논하자면 펜에 잉크가 모자란다. 미국 사례에서 보듯, 드러나는 차별은 줄었지만 차별의 범위는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인종 차별을 넘어 성별, 종교, 장애, 나이, 출신 지역, 혼인 여부, 학력, 전과(前過), 병력(病歷) 등 차별 목록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여기에 일부 몰지각한 정치인들의 혐오 발언(hate speech)은 차별 분위기를 부채질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빈부, 지역, 장애인, 외국인 등 다양한 차별을 목격하게 된다. 차별에 대응하는 방법이 관련 법 제정에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공감 능력을 가진 시민을 육성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세금을 걷고, 치안을 유지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것만큼 교육을 중시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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