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짧은 녹색불, 춘천 노인들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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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짧은 녹색불, 춘천 노인들이 위험하다

    노인 평균 보행속도 1초당 0.85m, 지팡이 쓰면 0.7m
    일반 횡단보도 제시간에 건너려면 1초당 1m 걸어야
    한 노인 중앙시장 인근 횡단보도 절반도 못 가 신호 끝

    • 입력 2022.09.22 00:01
    • 수정 2022.09.23 00:06
    • 기자명 이현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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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죽림동의 한 횡단보도에서 모자를 쓴 노인이 중앙선을 넘자 신호는 이미 빨간불이 되어버렸다. (사진=이현지 인턴기자)
    21일 죽림동의 한 횡단보도에서 모자를 쓴 노인이 중앙선을 넘자 신호는 이미 빨간불이 되어버렸다. (사진=이현지 인턴기자)

    #21일 오후 춘천 후평동 행정복지센터 근처의 횡단보도. 한 노인이 녹색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에 들어섰다. 하지만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 횡단보도를 반쯤 건넜을 때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미처 건너지 못한 노인은 대기 중인 차량에 미안하다는 손짓을 보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춘천지역 횡단보도들의 보행 신호 유지 시간이 너무 짧아서 노인들이 시간 내 보도를 건너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 횡단 중 발생한 보행자 사망사고 피해자의 절반은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횡단보도 시간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춘천시민 김모(77)씨는 “횡단보도의 절반 정도를 갔다 싶으면 어김없이 빨간불로 바뀐다”고 했다. 그는 최근 인공관절 수술을 받으면서 걸음이 느려졌다. 하지만 김씨의 걸음이 느린 것을 탓할 수만은 없다. 노인들이 건너기엔 보행 신호 유지 시간이 실제로 너무 짧기 때문이다. 

    경찰청 연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노인들의 평균 보행속도는 1초당 0.85m이고, 지팡이 등 보조 장치를 동반하면 초당 0.7m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짐이 있는 노인은 속도가 더 느려진다.

    그렇다면 녹색불은 얼마나 지속될까? 횡단보도 보행신호 유지 시간은 경찰청 매뉴얼에 따른다. 도로마다 다른 초기 진입시간 4~7초에 횡단 거리 1m당 1초를 더해 계산한다. 즉 도로 폭 10m인 곳의 횡단보도는 14~17초 동안 보행신호가 켜진다. 1초당 0.7m를 걷는 노인이 14초 동안 갈수 있는 거리는 9.8m다. 만약 10m 폭 도로가 규정에 맞춰 14초 동안 보행신호가 들어온다면 노인은 시간 내에 건너지 못한다.

    후평동 행정복지센터 근처의 횡단보도는 도로 폭 약 17m에, 보행 신호는 24초 동안 들어온다. 초당 0.7m를 걷는 노인은 24초 동안 16.8m를 갈 수 있다. 실제로 노인들이 건너기엔 빠듯한 시간 동안만 보행 신호가 들어오는 셈이다. 

    이처럼 노인들이 제 시간에 건너기 어려운 횡단보도가 춘천시내 곳곳에 있다. 죽림동 춘천중앙시장 인근 횡단보도, 동면 장학교차로, 근화동 모던하우스 앞 횡단보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인보행자의 사망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는 것도 짧은 보행 신호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전체 보행자 사망자(1093명) 중 절반 이상이 만 65세 이상 노인이었다. 춘천시청 관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을 대상으로 올해까지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녹색불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신호등을 설치할 계획이지만 그 외에 지역 횡단보도에는 적용 계획이 아직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년에는 민원이 들어오는 횡단보도까지 신호 연장 신호등을 확대 적용하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충식 기자·이현지 인턴기자 seo90@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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