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선의 예감] 고(古)음악, 백문불여일청(聽) 백청불여일험(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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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의 예감] 고(古)음악, 백문불여일청(聽) 백청불여일험(驗)

    • 입력 2022.09.22 00:00
    • 수정 2022.09.23 00:06
    • 기자명 용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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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용호선 춘천지혜의숲 시니어아카데미 부원장

    거듭한 태풍에 휩쓸린 민심은 간과했던 간사함을 성찰케 한다. 그래도 두려움을 떨쳐내고 맞는 날씨는 전래적인 양상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청명하다. 완연한 가을, 계절의 은혜로움이니 일견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더라도 코로나19 팬데믹은 여전히 접촉을 막아서고 있다. 대면 수업의 간절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답답하게 하는 마스크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고충도 마찬가지다. 거역할 수 없는 AI(인공지능) 대세에 밀려나서는 안 될 숙제가 그렇다. 지난 2월 작고한 이어령 선생이 생전에 역설한 ‘디지로그(Digilog·디지털과 아날로그 합성어)’의 지혜를 되새기게 한다.

    바야흐로 천고마비지절, 요즘 춘천 지역사회의 키워드는 바로크(Baroque)다. 하지만 가구(家具)를 떠벌리려는 게 아니다. ‘바로크 음악’이 심지다. 어원은 포르투갈어 바호쿠(Barroco),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이다. 일탈, 탈주를 의미하는 이 문예사조의 명칭은 후세(後世)인 고전주의 관점에서 부여한 비난의 의미가 깔려 있다. 온전함, 균형감을 추구했던 이전 르네상스 시대와 비교한 해석이다. 하지만 엄연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다. 본질·본연에 더 충실하고자 한 의지가 다소 과장된 선율과 리듬을 발현시키기도 했지만, 순기능인 신선함을 체감케 했다. 계몽을 강조한 대중성, 자극을 극대화한 불협화음, 풍성한 장식성, 화려한 기교 등을 접목한 게 악기의 진화와 메시지 전달 효과를 북돋아 오케스트라·오페라·칸타타의 발판이 됐다. 

    J. J. 루소의 개혁·혁신 의지를 기반으로 일궈낸 문명의 근대화, 그 문을 열어젖힌 사조(思潮)가 바로크다. 춘천국제고음악제의 토대다. 바로크 시대의 가치와 세태를 재음미하게 하는 무대다. 올해 25회째, 한국 최고(最古·最高)의 고음악제로 평가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항간의 오해를 거둬야 하는 가치는 흥청망청 축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숙고하는 성찰, 숭고함을 체감케 하는 예술·음악제라는 사실이다. 춘천시·국립춘천박물관·강원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지원금(1억2200만원)은 역설적으로 다행이다. 고사해서는 안 될 음악제, 더 지혜롭게 펼쳐야 하는 이유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 가치는 (재)플라톤아카데미 공식 블로그에 걸려 있는 ‘2022년 새해 읽어 볼 만한 책’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하는 책은 ‘클래식을 처음 듣는 당신에게(박종호 저, 풍월당 간)’다. “대중의 취향에 맞추어 클래식의 본질을 흐릴 것이 아니라, 클래식 본연의 가치를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풍월당’ 대표인 저자 박종호의 지론이다.

    그의 소신은 확고하다. “클래식에 ‘고전’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은 클래식이 여흥이나 오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과 사회에 기여하고 그 정신을 담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 베토벤의 교향곡은 갈기갈기 나뉜 인간사회의 구성원들을 소외된 자 없이 모두 하나로 껴안으려 한 것이고, ⋯ 베르디의 합창곡들은 빼앗긴 조국을 향한 독립의 갈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런 사람들의 정신적 가치를 이해해야만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반걸음 후퇴도 조금의 협상의 여지도 없습니다. 그것 때문에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입니다.”

    지난해 정부, 문화체육관광부가 춘천시를 ‘문화도시’로 지정하자 ㈔춘천국제고음악제가 도심지에 내건 현수막이 그랬다. “문화도시 춘천, 고(古)음악으로 품격을 더하겠습니다.” 민선 8기 춘천시가 내세운 명품도시의 격을 지지하는 선견지명이었다.

    어쨌거나 사반세기(25년)를 맞은 올해 춘천국제고음악제는 국내외 바로크 음악 마니아들을 모시고 우주를 유영하고 있다. 지난 16일 개막연주를 통해 신비의 세계로 출발했다. 올해 주제가 ‘룩스 에테르나(Lux Aeterna)’여서다. ‘영원한 빛’이다. 춘천국제고음악제가 자임한 책무이자 지향하는 세계다. 

    역대 음악감독들이 줄줄이 무대에 선 춘천시청 로비에서의 연주회까지 진행한 올해 고음악제는 23일 천주교 애막골성당에서의 폐막연주회로 대미를 장식한다. 우주여행을 마치고 다시 인간세계,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다. 때마침 2023년도 강원대학교 음악학과 신입생 모집에 고음악의 핵심 악기 리코더 전공이 배정됐다는 소식이다. 춘천의 음악문화, 춘천국제고음악제에 힘입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의심스럽다면 바로크 시대 악기 연주자와 합창단 40여명이 출연하는 ‘바흐솔리스텐서울’의 장중한 폐막무대를 확인할 일이다. 하여 권한다. 백문불여일청(聽) 백청불여일험(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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