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하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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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은 하늘입니다

    • 입력 2022.07.21 00:01
    • 수정 2022.11.09 14:18
    • 기자명 권소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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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11년 전 대학 새내기 시절, 충남 서천으로 봄 농활을 갔다. 매 끼니 식탁에 앉아 마음에 새기며 불렀던 노래가 이 ‘밥가’다.

    냄새나는 닭장을 치우고, 고추밭에 철근 지지대를 세우고, 모내기 판을 만들어 옮겼다. 농사일이라곤 해본 적 없는, 갓 교복을 벗은 책상물림은 그렇게 고기와 채소, 쌀이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처음 경험했다.

    잊고 있던 농활의 추억을 떠올린 것은 새삼 ‘먹거리’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해서다.

    요즈음 어딜 가나 ‘물가’가 화두다. 국제유가가 폭등하고, 주요 곡물 생산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밀‧옥수수 수출이 비정상화됐다. 배달로 치킨 한 마리를 시켜 먹으려면 3만원 가까이 지불해야 하는 세상이 됐다.

    올해 상반기 국제 곡물 가격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올랐다. 최근 시카고상품거래소(CBOT)의 곡물 선물가격은 전년 대비 옥수수(29.3%), 밀(18.1%), 콩(17.4%) 순으로 상승했다.

    옥수수와 밀은 그 자체로도 식량이 되지만, 육류 생산에 필수적인 사료이기도 하다. 곡물 가격이 오르면 고깃값도 함께 오른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올해 3분기 곡물 수입 단가가 2분기 대비 식용은 13.4%, 사료용은 12.5%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식량 위기발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여전할 것이라는 의미다.

    코로나19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목도하기 전까지, 저 먼 나라 소식이 우리 밥상에 이렇게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 체감하긴 쉽지 않았다.

    혹자는 근래 식량 위기를 신자유주의 체제로 국가 간 무역 의존도가 높아진 데서 찾기도 한다. 공산품뿐 아니라, 식량자원 역시 무역 ‘상품’이 돼 국경을 넘는다. 그 사이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취약해진 식량 주권은 전쟁, 팬데믹과 같은 변곡점에서 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연간 1717만t의 곡물을 수입하는 세계 7위의 곡물 수입국이다. 곡물 자급률은 2020년 기준 20.2%에 그친다. 쌀을 제외하면 밀(0.5%), 옥수수(0.7%), 콩(7.5%) 등 기타 곡물의 자급률은 3.2%에 불과하다. 세계식량안보지수(GFSI)는 지난해 32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국제 곡물 생산은 소수의 국가에 집중됐다. 곡물 무역은 생산국이 자국에서 소비하고 남는 물량을 수출하는 ‘얇은 시장’이다. 수출국의 식량 사정이 어려워지면 그만큼 수출량은 줄어든다.

     

    춘천지역 농업 현장. (그래픽=박지영 기자)
    춘천지역 농업 현장. (그래픽=박지영 기자)

    최근 지역 농가의 가장 큰 화두는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다. CPTPP는 미국이 주도하던 TPP에서 미국이 빠지자 일본 주도로 멕시코‧싱가포르‧캐나다‧호주 등 11개국이 결성한 포괄적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재계에서는 CPTPP 가입에 따른 역내 공급망 강화에 대한 기대감이 크지만, 농어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장 개방에 대한 압박으로 호주, 뉴질랜드 등 농업 강국에서 수입산 농산물이 들어온다면, 국내산 농산물 생산 체계가 타격을 입을 것을 우려해서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협상 과정에서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 등을 조건으로 내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강원도연맹은 지난 12일 농민의길·전국어민회총연맹·CPTPP가입저지범국민운동본부가 서울역 인근에서 개최한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 이들은 유류비, 사료비, 영농자재비가 폭등해 농민들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CPTPP에 가입한다면, 식량 위기 시대에 식량 주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덕수 춘천농민회장은 “식량 수출국에서 언제까지나 저렴하게 농산물을 판매하리라 생각하면 안 된다”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겪으며 식량 문제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개입했을 때 우리 생활에 어떤 부작용이 일어나는지 경험하지 않았느냐”고 호소했다.

    춘천지역 농가는 지난해 기준 6555곳. 농가 인구는 1만5580명이다. ‘겨우’ 춘천시 전체 인구(28만5907명)의 5.4%에 그치는 비중이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농업 정책의 결과는 농산물을 구매하는 일반 소비자가 함께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 며칠 상추 한 장당 가격이 200원에 육박한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폭등하는 식자재 가격에 학교 현장에서는 급식 메뉴를 바꾸고, 봉사단체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이 줄어든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따뜻한 밥 한 끼는 누구에게나 기쁨이어야 한다. 머리 위의 하늘이 누구에게나 파랗게 보이는 것처럼.

    [권소담 기자 ksodamk@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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