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몰랐던, A후보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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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이 몰랐던, A후보에 대한 이야기

    • 입력 2022.06.02 00:01
    • 수정 2022.11.09 14:47
    • 기자명 한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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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상혁 콘텐츠전략부장
    한상혁 콘텐츠전략부장

    이 칼럼은 이번 6·1지방선거 춘천시 한 선거구에 출마했던 시의원 후보 A씨에 대한 글이다. 지방 선거가 끝난 만큼 선거에 영향을 미치지 않겠지만, 여러 오해를 피하기 위해 성명을 이니셜 처리한다.

    A는 시의원 후보 35명 가운데 4명 밖에 없는 무소속 후보였다. 무소속 후보 중 나머지 2명은 과거 양대 정당 가운데 한 곳 소속으로 시의원을 했던 인물이고, 다른 한 사람은 이번이 첫번째 시의원에 도전하는 정치 신인이다. A 후보는 시의원 선거 후보 중 유일하게 2018년 지선에 이어 두번 연속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유일한 여성 무소속 후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가 다른 후보들과 가장 다른 점은 오랫동안 스스로 정당 가입을 거절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지방 선거에서는 2006년부터 정당 공천을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유권자들이 후보를 선택하기 위한 기준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지방선거, 특히 시의원 선거에서는 솔직히 말해서 자기가 사는 지역구라도 어떤 사람이 후보로 나왔는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후보의 소속 정당이 있다면 유권자가 후보의 성향을 파악하기 쉽다.

    정당 공천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정당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큰 것은 문제가 된다. 지방선거, 특히 기초지자체의회 선거의 경우 그렇다. 각 선거구에서 2~3명을 선출하는데 대부분 유권자가 정당만 보고 투표하니 거대 양당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에서 공천한 각 1명은 거의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다. 당선 가능성이 없으니 군소 정당은 아예 후보를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식으로 춘천시에서도 이번 선거에서 2명이 투표도 없이 당선됐다. 시의회 의원을 정당이 공천으로 선출하는 셈이다. 직접투표에 의한 선거를 채택한 우리 헌법을 생각하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A 후보는 지인 권유로 정당에 가입한 적이 있었지만 선거에서 당의 도움을 받은 적은 전혀 없다. 정당 공천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시의원 선거에서 2018년 무소속으로 춘천시 한 선거구에 출마해 낙선한 경력이 있다. 당시 이 선거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가 각각 45%, 27%의 표를 받아 당선됐다.

    A 후보는 소속 정당이 없으니 정당을 보고 그에게 투표한 유권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는 지역에서 25년간 어린이집을 운영했고, 틈나는 대로 경로당을 다니며 봉사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얻은 득표율이 14%였다. 무소속으로 선거를 뛰어 바른미래당, 민중당 후보를 이겼다.

    정당들은 A 후보의 저력을 보고 서로 자기 당으로 영입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A 후보는 정당 가입을 거절하고 이번에도 무소속으로 나왔다. 오히려 시의원이 왜 정당에 가입해야 하냐고 묻고 다닌다. 정당 가입을 거절한 이유를 A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시의원들이 정당공천 받으려고 중앙당이나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아부하고 끌려다니는 게 싫어서.”

    지자체 선거를 하는 이유는 그야말로 지방이 자치(自治)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방의회 당선권이나 다름없는 공천권을 중앙당이 쥐고 있으니 지자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은 공천권을 가진 중앙당과 국회의원들의 눈치만 보기 바쁘다. 오죽하면 지방의원들은 지역 주민들보다 지역구 국회의원을 받들며 사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지방 의회에서 의원들은 소신이나 주민 의견이 아니라 당의 결정에 따라 표를 던진다. 지방 자치라고 부를 수도 없다.

    지방선거 정당 공천이 지방을 죽인다는 지적은 10년 전부터 나왔다. 2012년 대선에서 주요 정당 후보들은 기초지방선거 정당 공천 폐지를 공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켜지지 않았다. 당시 여당은 선거가 끝나니 정당 공천 폐지가 위헌이라는 주장을 하며 공약을 뒤집었고, 야당도 슬그머니 뒤따랐다.

    이번 지방 선거를 앞두고 기초의원 정당 공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중앙 정치인의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공천권을 무기로 군림하는 중앙 정치인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들은 정당 공천이 없으면 지역 유지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새롭고 참신한 인물을 발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든다. 그 말도 맞지만 현재 같은 공천제는 폐해가 훨씬 더 크다. 공천제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진정한 지방 자치를 실현하기 위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A 후보는 지난번 선거에서도, 또 이번 선거에서도 스스로 '시민을 위한 심부름 꾼', '시민을 위한 대변인'이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 때 누구나 하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번과 이번 선거 운동 기간 A 후보 혼자서만 외쳤던 말도 있다. '기초의원 선거에 정당 공천은 필요 없다'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눈치 보고, 시민들에게 대접받는 시의원이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제가 후평2동 경로당에서 16년째 경로잔치 사회를 봤습니다. 시의원들은 선거 기간 열심히 인사하러 다니다가 당선되고 나면 경로잔치 개회식 때만 찾아와 인사하고 맨 앞자리에 5분 앉아 있다가 가더군요.”

    A 후보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됐는지, 낙선했는지는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선된 후보가 누구든지 간에 시의원으로서 지역 주민들을 위한 역할을 해 주면 된다. 하지만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각 정당은 A 후보가 정당 공천권 폐지를 주장하며 무소속으로 뛰어 얻은 표를 진지하게 헤아려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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