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원의 마음풍경]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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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의 마음풍경]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

    • 입력 2022.05.29 00:00
    • 수정 2022.05.29 21:58
    • 기자명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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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이순원 소설가·김유정문학촌장

    오늘 이 글은 제가 지난 일 년 반 동안 MS투데이 지면을 통해 여러분에게 인사드려온 ‘이순원의 마음풍경’ 마지막 원고입니다. 세상인심이 돌아가는 내력보다 이곳 김유정문학촌이 있는 실레마을의 고즈넉한 풍경과 이곳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이곳보다 더 벽촌이었던 대관령 아래 제 고향 이야기를 주로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쓸 때마다 알퐁스 도데의 <풍차 방앗간의 편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스테파니 아가씨에 대한 어느 목동의 마음을 그린 ‘별’ 이야기도 그중 하나이지요.

    실제 김유정문학촌이 있는 이곳 실레마을에 ‘김유정역’과 ‘김유정우체국’ ‘농협 김유정지점’도 있고, 김유정 선생의 이름을 딴 여러 음식점과 가게들 가운데 ‘유정방앗간’이 있다는 얘기도 이미 했지요. 이곳 실레마을에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계십니다. 어찌 한 마을에 꽃을 좋아하는 이분들뿐이겠습니까만, 오늘 저의 마지막 원고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나 꽃을 좋아하는 몇 사람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그중 한 분이 바로 실레마을 ‘유정방앗간’의 주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헷갈릴 수 있겠네요. ‘유정방앗간’을 운영하는 방앗간 주인이 따로 있고, 방앗간이 세를 들어 있는 건물의 주인이 따로 있는데, 이 건물 주인 부부가 꽃을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은 춘천에 사는 것이 아니라 멀리 경기도 용인에 사는데 봄여름가을 동안에는 일주일에 두 번 내지 세 번 이곳으로 와 방앗간 주변을 꽃동산으로 가꾸어놓고 돌아갑니다.

    저도 어린 시절 대관령 아래 산촌에서 나고 자라, 또 어린 시절 산이고 들로 늘 소를 먹이러 다녀서 다른 사람들보다 나무와 풀을 잘 압니다. 집에 소가 있는 집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풀을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소가 잘 먹는 풀과 소가 먹지 않는 풀입니다. 콩은 사람과 소가 다 좋아하지만, 들깨 참깨는 소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밭에 소가 들지 말라고 밭 가로 들깨를 두 줄 심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람이 먹을 수 있는 풀(나물)과 못 먹는 풀을 구분하고, 절대로 먹으면 안 되는 풀(독초)을 구분합니다. 산에 나는 버섯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먹을 수 있는 버섯과 못 먹는 버섯을 구분합니다. 과일도 먹을 수 있는 열매와 먹을 수 없는 열매,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열매를 구분하지요. 요즘 철은 뽕나무에서 나는 검붉은 오디와 붉고 새콤한 줄딸기가 한창이지요.

    이렇게 산과 들에서 자란 저도 고향마을에서 보지 못한 희귀한 야생화와 화초들이 참 많습니다. 보라색과 자주색이 섞인 듯한 금강초롱이나 용담 같은 꽃은 우리 고향마을에는 없었는데, ‘유정방앗간’의 건물 주인은 그것뿐 아니라 솔도라지, 종이꽃, 색색의 큰으아리, 작은으아리꽃 등 꽃 도감을 봐야 겨우 이름을 알 수 있는 꽃들을 구해와 방앗간 주변 전체를 꽃 정원으로 만들어놓습니다.

    저는 매일 그분들이 가꾸어놓은 화원을 보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 먼 곳에서 와서 화원을 가꾸고 돌아가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면 마치 그곳의 주인이 아니라 김유정문학 마을의 출장 정원사 같습니다. 참 감사한 분들이지요.

    요즘 유정방앗간 정원에는 산에서 나는 다래꽃이 한창입니다. 다래 덩굴과 으름덩굴이 함께 어울려 있는데 으름은 다 자라면 작은 바나나 크기만 합니다. 모양도 바나나와 비슷한데 지금 으름 열매가 성냥개비 크기만 하게 자라나 있습니다. 곧 단오가 다가옵니다. 단오가 되면 앵두가 한창이고, 앵두 하면 비유적으로 떠올리는 게 붉은 입술이지요. 그렇지만 하얀색으로 말갛게 익는 앵두도 있답니다. 저는 하얀 앵두를 ‘유정방앗간’ 정원에서 처음 보았습니다.

    우리 문학촌 안에는 도자기, 민화, 한지공예 등 여러 체험방이 있습니다. 그중 도자기와 민화 체험방 선생님들도 꽃을 너무 좋아하는 분들이라 체험방 화단이 철마다 새로운 꽃들도 단장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꽃은 말이지요, 그것이 아무리 여러 종류로 많이 피어나도 바라보는 사람 눈에 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을 알아보는 사람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이 꽃은 무슨 꽃일까 관심을 갖는 사람 눈에만 보인다는 것이지요.

    지난 일 년 반 동안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나날이, 그리고 그 나날들이 모여 살아가는 날 모두가 인생의 아름다운 꽃밭 같기를 바랍니다. 그럼 여기 실레마을 꽃밭에서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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