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안반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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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영춘 시인의 문예정원] 안반데기

    • 입력 2022.05.11 00:00
    • 수정 2022.05.11 08:46
    • 기자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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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반데기.7

                                                                 정정하

     

    육칠월 지날 때쯤, 사방팔방 하얀 감자꽃이
    안반데기 허리를 일으켜 세웁니다
    이곳은 아랫말보다 봄이 늦어 꽃피는 시절도 늦습니다
    이곳에서 흘러간 길들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더 많던 시절이
    귓가에 남아 윙윙 바람소리를 냅니다
    높이 뜬 구름과 말매미 울음소리에 안반데기는 더 높이 휘어집니다
    허리와 눈꺼풀이 짜부라든 엄마는, 꾸던 꿈을 꾸듯
    이른 잠 청하는 모습, 자식보다 더 오래된 풍경입니다
    끌끌한 자식들이 모셔 가길 원하지만
    잔등을 쓸어주는 바람이 있어 안반데기가 좋다고
    꿈속에서도 손사래를 칩니다
    한 철을 놀던 소도 꾀가 나는지 영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정정하: 양양 출생. 2001년 『문학세계』 등단. 시집 「안반덕이」 「터미널에 비가 온다」 외. 한국문협강원지회 회원. 강원여성문학인회 이사.

     

    이영춘 시인
    이영춘 시인

    이름도 생소한 이 시의 배경은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라는 곳에 위치한 지명이다. 일명 ‘안반덕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강원도의 재발견’이란 다큐(documentary)로 널리 알려지게 된 고랭지다. ‘구름 위의 땅, 별의 나라, 하늘 아래 첫 동네’라고 하는 이곳은 스위스의 알프스라 할 정도로 신비경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는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 있다. 군부시대 때 고랭지 채소 권장과 땅을 일궈 살라는 개간사업 권장으로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개간한 땅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고랭지 채소밭으로 “육칠월이면 사방팔방 하얀 감자꽃이/안반데기 허리를 세우고” 가을이면 배추포기들이 푸른 파도 물결을 이루는 관광지가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이룩한 역사 뒤편에는 우리 민초들의 피땀이 서려 있다. 그러므로 민초들의 피땀은 항상 우리 역사의 뿌리이고 강물이다.

    이 시의 작자는 이 자연 공간을 배경으로 민초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삶을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연작시 10편을 썼다. “겉보리 서 말을 지고 들어와/비둘기처럼 사랑도 했지만/이제는 다 한물갔다며 낮게 웃는 노부부”(「안반데기.2」)가 그들이다. 또 그들은 “산등성이에 부리를 박았다/저 부드러운 흙을 믿어보자고/주먹밥을 나눠 먹으며 누더기 잠을 잤”(「안반데기.4」)듯이 민초들의 삶의 애환이 언뜻언뜻 심금을 울린다. 

    역사의 강물은 흘러 지금쯤이면 “끌끌한 자식들이 모셔 가길 원하지만/잔등을 쓸어주는 바람이 있어 「안반데기」가 좋다고/꿈속에서도 손사래를 칩니다”에서 보듯이, 이제 그 간척지 「안반데기」는 그네들에게 자식과도 같은 생활 터전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곳의 아름다운 풍광에만 눈을 돌릴 일이 아니다. 이 시의 중심 사상은 그늘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아픈 이면이다. 좋은 시 한 편 읽는 것은 역사책 한 권을 읽는 것과 비례한다고 하는 말이 있다. 한 시인의 「안반데기」라는 작품을 통하여 우리는 그 역사의 뒤안길 한 페이지를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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