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헤매는 시간··· 존재의 역설 ‘알 수 없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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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찾아 헤매는 시간··· 존재의 역설 ‘알 수 없는 너’

    춘천 출신 극사실주의 화풍 한영욱 작가
    20년 만의 귀향··· 국내서 4번째 개인전
    알루미늄에 스크래치 내 입체적 질감 입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즘

    • 입력 2022.04.10 00:01
    • 수정 2022.04.10 23:12
    • 기자명 조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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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영욱 작가의 ‘FACE’. (사진=조아서 기자)
    한영욱 작가의 ‘FACE’. (사진=조아서 기자)

    누군가를 이토록 오래 바라본 적 있던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 섬세한 주름, 투박한 살갗이 발길을 붙잡는다. 무엇보다 정면을 응시한 ‘알 수 없는 너’의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나’를 직면하는 듯하다.

    춘천 출신 한영욱 작가의 ‘FACE’ 시리즈다. ‘FACE’는 절묘한 작명이다. 그의 작품은 단어의 3가지 의미 ‘얼굴’ ‘마주하다’ ‘직면하다’를 모두 경험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작가는 싱가포르, 도쿄, 쾰른, 시카고 등 국제 아트페어와 주요 옥션에서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외국에서 먼저 이름을 알렸다.

     

    한영욱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한영욱 작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조아서 기자)

    그의 작업은 스크래치로 시작해 스크래치로 완성된다. 알루미늄 패널에 송곳 등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표면을 긁어낸다. 그 자리에 유화를 덧대고 다시 상처 내는 행위를 무수히 반복한다. 얕거나 깊게 파인 상처는 한 인물의 세월을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현실감과 입체감을 더하고, 알루미늄의 차가운 물성은 사라진다.

    작가 대신 관람객과 소통하는 익명의 주인공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의 재구성이다. 실재보다 더 실재처럼 느껴지는 인물이 가상의 이미지라는 사실은 극사실주의를 표방하는 그의 작업을 더욱 역설적으로 만든다.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지점인 그의 작업은 실존과 본질의 간극을 줄인다.

    그가 20년 만에 고향인 춘천을 찾았다. 춘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한 작가의 ‘알 수 없는 너’는 이달 30일까지 만날 수 있다.

     

    ‘STRANGER’ 시리즈(왼쪽, 가운데)와 ‘FACE’. (사진=조아서 기자)
    ‘STRANGER’ 시리즈(왼쪽, 가운데)와 ‘FACE’. (사진=조아서 기자)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9년 만에 열린 네 번째 개인전이다. 8.8m 초대형 작품과 미발표 습작 등 다양한 작품을 총망라해 한영욱 작품의 역사를 훑을 수 있다.

    대형 작품 ‘STRANGER’ 시리즈는 대상을 단독으로 배치하던 기존 작업과 달리 화면을 군중으로 가득 채웠다. 방향과 초점을 변형시키는 새로운 시도가 돋보인다. ‘DOG’ 시리즈는 사람과 표피의 질감이 다른 새로운 대상인 강아지가 주인공이다. 

    전시장 한 편에는 암막 공간이 마련됐다. 이 공간은 빛을 차단해 조명에 반사되는 금속판의 성질을 극대화시킨다. 화폭을 뚫고 나오는 입체감은 빛에 따라, 감상하는 방향에 따라 이미지를 변화시킨다.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조명에 반사된 작품 모습. 작품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사진=조아서 기자)
    빛이 차단된 공간에서 조명에 반사된 작품 모습. 작품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사진=조아서 기자)

    클라우디오 마그리스의 저서 ‘다뉴브’를 모티브로 한 전시명 ‘알 수 없는 너’는 그의 지난한 작업 과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약 3000㎞에 달하는 다뉴브강은 지역마다 다른 이름을 가진다. 4년간의 여행을 마치며 저자는 끝내 다뉴브강을 “알 수 없는 너”라고 정의한다.

    한 작가의 작업은 존재하지 않는 ‘알 수 없는 너’를 끊임없이 찾아 헤맨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과정은 작가 자신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기도 하다. 대상과 마주하는 시간을 ‘너’를 ‘나’로 치환하는 그의 작품처럼 말이다.

    한 작가는 “그간 전시를 하며 평가에 대한 긴장을 놓은 적이 없는데 이번 전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했다”며 “고향에 온 편안함과 고향 사람들의 따뜻한 시선들이 이번 전시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고 소회했다.

    [조아서 기자 chocchoc@ms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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